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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법화사 아미타 삼존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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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법화사 아미타 삼존불 이야기 
 
제주 법화사에서는 대웅전 규모로 구품루 누각을 복원하고  극락의 연못을 상징하는 구품연지를 복원하였다.구품연지에는 백련과 수련들이 피어나는 칠석을 전후하여 연꽃축제를 열고 있다. 
 
제주는 18.000의 신들이 거주하는 신들의 섬이며 절오백.당오백으로 불리는 영성문화의 뿌리가 깊은 곳이다.제주의 전통과 문화는 조선의 억불숭유정책으로 신당과 사원은 커다란 타격을 받는다.그 타격이 절정에 이른 것은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도내에 있는 절과 당을 미신행위로 몰아 모두 불태우고 불타지 않는 불상등은 모두 바다로 던져 버렸다.제주에서는
,영천 이목사의 절오백 당오백 파괴사건,으로 부른다. 
 
이후 제주에는 200년 동안 무불시대를 지내왔다.현재 제주도의 조계종 사찰을  거느리는  본사는 한라산 중턱에 있는 관음사이다.관음사는 1908년도에 창건되었다.안 봉려관 스님에 의해 창건된 관음사는 제주4.3사건으로 군.경토벌대의 초토화작전으로 모두 불태워 사라지고 현재의 건물은 1960년대 이후에 지어진 것들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로 유명해진 강정마을 곁에는 세불 포구가 있다.세분의 부처가 제주를 떠난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세분의 부처는 법화사 극락전에 모셔졌던 아미타 삼존불을 말한다.명태종 영락제는 조카 건문제를 내쫓고 왕위에  오른 다음 자신의 아버지인 주원장을 모실 추모사찰 대보은사를 남경에 창건한다.그리고 사신 황엄을 보내어 제주도 법화사에 있는 아미타 삼존불이 원나라 장인 양공이 제작한 뛰어난 불상이니 모셔 오라고 명을 내린다. 
 
황엄이 한양에 도착하여 조선 태종을 만나 진행된 일이 태종실록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과거 탐라가 몽골의 직할령 이었던  까닭에 명은 이를 구실로 탐라를 직접 지배하려고 하였다. 
 
탐라를 정탐할 목적으로 황엄과 한 티무르를 보내 법화사의  아미타 삼존불을 가져 오게 한것이다.조선 태종때 외교 관계에서 실수가 저질러 졌다면 제주땅도 그때 중국으로 귀속될수 있는 상황이었다. 
 
조선 태종도 급박한 상황을 인식하고
미리 김도생과 박모일행을 제주에 급파하여
단 17일 만에 서귀포 법화사에서  강정마을 부근 세불포구를 떠나 뱃길로 해남에 도착하여 나주까지 옮겨 놓았다. 
 
이때 동원된 인부가 수천명이었으며 불상을 모신 감실의 높이와 폭이 각각
7척  이었다고 하니 실제 불상의 규모도 대단했을 것이다.감실을 만들고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판자 1천장.철 6백근.마7백근을 사용하였다.안에는 막이용으로 백지 2만 8천장과 면화 2백근을 사용하였다. 
 
법화사의 아미타 삼존불이  한양에 도착하자 태종은 이조판서 이직을 보내어 맞이하게 하였다.황엄은 조선왕이 직접 나와서 불상을 맞이하고 오배 삼고두의 예를 갖추도록 큰소리로 요구하였다. 
 
법화사에는 노비가 280명 있었다고 하니 제주관아의 영향력보다 컸으리라 생각된다.법화사는 아미타 삼존불이 빠져 나가고 노비도 30명으로 줄게 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잊혀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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