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과 선지식에게 귀의함을 말한다. 이 주제로 열리는 특별전에 대원사 지장회원과 아시아문화재단 회원이 함께 가을 문화 탐방을 다녀왔다. 예산 수덕사에서 열리는 직(織). 염(染). 수(繡) 특별전이다. 말 그대로 직물과 염색과 자수를 놓은 유물들인데 불교와 관련이 깊다. 견오백지천년(비단은 오백년, 종이는 천년)이라는 말로 알 수 있듯이 비단은 기나긴 세월 보존을 할 수 있어 오늘날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500년 전의 정성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차창으로 누런 들판이 펼쳐지고 가을색이 완연한 산사에는 노랗고 빨간 나뭇잎들이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수덕사에 도착하여 일주문에서부터 현장스님은 박학다식함에 열정을 더해 한 가지라도 더 일러주고자 쉼이 없으시다. 기둥 두개로 집을 지을 수 있었던 조상님의 지혜와 사천왕상이 무엇을 뜻하는지와, 절집 입구에 놓여있는 약수의 의미와 포대화상에 대한 설명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문제일 뿐이지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치지 못하신다.

 

 

 

금방 비질을 마친 듯 정갈한 마당 한가운데 석탑과 단아한 자태의 대웅전이 보인다. 부처님전에 왔음을 고하고 나와 박물관으로 향하니 관장 정암스님이 먼저 나오셔서 환대를 해 주신다. “지심귀명례”를 주제로 작년에 불복장 특별전을 개최하여 문광부 장관상을 받으셨단다. 올해도 같은 주제로 특별전을 열기 위해 멀리 중구 요녕성과 홍콩까지 여러 번 다녀오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다니 덕분에 국내에서 이런 눈요기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어 스님께 다시금 감사한 마음이 든다.

 

 

 

“우리민족은 백의민족이지요. 좋게 이야기 하면 수수한 문화를 가진 것이지만 달리 이야기 하면 뒤진 문화일 수 있습니다. 신라 때 진덕여왕 당시 당나라 고종 즉위식에 시를 직물로 짜서 보냈다는 내용이 있어요. 그 당시에 직물을 어떻게 짤까요. 베틀은 평직밖에 못 짜는데 무늬가 있는 직물이나 글씨를 짜는 것은 2층 3층 구조의 기계로 밖에 할 수 없어요. 영조는 하루에 두 끼밖에 안 먹고 사치스러운 것을 싫어한 왕인데 무늬 있는 직물도 싫어해서 직물을 짜지 말라는 명을 내렸어요. 그 이후로 기술과 장인들이 다 사라졌어요. 겨우 불교를 통해서나마 이런 것들이 남아 있는데 선암사 부처님 아래 깔았던 천인데 용이 수놓아져 있다 해서 “용문탁의”라고 합니다. 이 자수는 중국에서 황제가 입는 곤룡포를 사절을 통해 보냈는데, 선암사에 하사가 되어 그 옷을 이어 붙여서 부처님 아래 놓은 것입니다. 선암사 측에 그 기록이 남아 있어요. 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유물 하나하나 마다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주시는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생각해 본다. 지심귀명례하는 마음이면 이런 명품들이 탄생하지 않을수 없으리라고. 한줄 한줄 천을 무늬를 만들거나 수를 놓으며 바늘 한땀에도 시간을 정지시키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리를 향한 지극한 정성을 담으니 기적처럼 보이는 이러한 작품들이 탄생했을 것이다.

 

수덕사를 나와 마음과 정신을 채웠으니 이제 고픈 배를 채울 시간. 맛있는 공양을 마치고 정읍 정림사지 박물관으로 차를 돌렸다. 정림사지 박물관은 개관한지 15일 밖에 되지 않아서 무료입장이 가능했다. 입구에서 현장스님은 지휘봉까지 들고 지도를 보며 일본에 무용과 음악을 전한 미마지의 이야기와 곰나루에 얽힌 전설등을 열심히 설명해 주신다.

 

 

 

“만물이 윤회하여 다시 태어나거늘 어찌 미물이라도 생명을 중하게 여기지 않을 것인가. 부처님을 공양하고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실천하는 백제에서 금후 살생을 엄히 다스릴 것을 고하노라. 이에 가가호호 고기 잡는 도구와 사냥하는 도구를 모두 관가로 가져오기를 권하노라. 또한 사냥하기 위한 매를 가두어 두고 있는  집은 즉시 이를 자연에 놓아 주기를 권하노라”

박물관 내부에 적혀있는 글귀이다. 백제시대 불법이 아름다운 꽃을 피울 때 백성을 다스리던 계급 또한 불법에 부응하는 법률을 제정하여 공포한 것이다. 나당 연합군의 말굽아래 짓밟혀 지금은 거의 흔적을 찾아 볼수 없는 백제의 문화이지만 지난 시절 우리에게 이처럼 아름답게 꽃피운 불법의 세상이 있었음이 자랑스럽고 현재에 이어지지 못함이 안타깝다.

 

박물관에는  백제 문화와 정림사에 대한 설명을 최신 시설로 갖추어 놓아 큐레이터의 설명이 없어도 모든 정보를 간편하게 알 수 있었다. 군데군데 관람객을 배려해 마련해 놓은 쉼터와 백제식으로 꾸며 놓은 실내정원이 아늑하다.

 

오는 길에 가을비가 촉촉이 차창을 적신다. 아시아 문화 재단이 광주시의 인가를 받아 나선 첫 탐방길이 순조롭고 보람있게 회향하게 됨을 감사히 여기며 벌써부터 두 번째 탐방은 어디로 갈 것인지가 자못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