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집니다. 산골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까요. 냇물에 섞인 나는 물이 되었다고 해도 처음에는 깨끗하지 않겠지요. 흐르면서 또 흐르면서, 생전에 지은 죄를 조금씩 씻어내고, 생전에 맺혀 있던 여한도 씻어내고, 외로웠던 저녁, 슬펐던 앙금들을 한 개씩 씻어내다 보면, 결국에는 욕심을 다 벗은 깨끗한 물이 될까요.

정말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은 그 물 속에 당신을 비춰 보여주세요. 내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세요. 나는 허황스러운 몸짓을 털어버리고 웃으면서, 당신과 오래 같이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겠습니다. 당신은 그제서야 처음으로 내 온 몸과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될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송두리째 가진다는 뜻을 알 것 같습니까. 부디 당신은 그 물을 떠서 손도 씻고 목도 축이세요. 당신의 피곤했던 한 세월의 목마름도 조금은 가셔지겠지요. 그러면 나는 당신의 몸 안에서 당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죽어서 물이 된 것이 전연 쓸쓸한 일이 아닌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마종기 / 물빛 1

세상에 알려진지 얼마 되지 않는 절, 청량사.
거기에서 일년 한번 열리는 산사 음악회에 작년 7천명이 모였다 한다.
한꽃 아카데미 회원님들과 현장스님을 모시고 이곳을 다녀왔다.
아침 8시 출발, 밤 10시 도착. 하루가 꼬박 걸리는 여정이었다.

가는길 버스안에서 스님께서는 왕서방(우리는 지금 서방으로 간다)의 다짐을 들려주시며 '발심의 노래'를 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안동휴게소에서 맛있는 야외 점심공양을 하고 서둘러 다시 청량사를 향하여 출발했다.
청량사아래 주차장에서 내려 만난 좁은 산길.
제법 각도가 느껴지는 비탈길, 30분의 산행이 녹록치 않음을 예감했다.
허나 비경을 간직한 절집이 쉬이 자신을 보여주겠는가.

드디어 청량사 유리보전에 도착하여 약사여래불을 친견하였다. 국내 유일하게 종이를 녹여서 조성된 불상이며, 1300여년 동안 한번도 자리를 옮기신적이 없으시단다. 유리보전의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다. 공민왕. 그와 노국공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한 자락이 청량사에 깔려 있다. 정혼후 11년이 넘도록 후사가 없던 노국공주는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과 함께 청량사에 피신을 와서 응진전에서 기도를 한다. 홍건적을 무찌르는 것과 아이를 갖는 것. 기도에 영험이 있어서 였을까. 그녀는 궁궐로 돌아가 회임을 하나 난산끝에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만다.

현장스님의 목탁소리와 함께 예불이 시작되고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며 유리보전앞 5층 석탑 탑돌이를 마치고 명상시간을 가졌다. 영험한 약사여래불을 모신 법당의 기운을 온믐으로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옆자리의 현주보살님은 ‘아카데미 강의시간 삼귀의를 할때도 고개만 까닥할 정도로 허리가 심하게 아팠는데 유리보전에서 삼배를 할때는 아무렇지도 않더라’ 며 신기한 체험을 속삭였다.

청량사 주지 지현스님의 청량사 소개가 이어졌다. 새벽과 아침에 걸쳐 산을 휩싸고 도는 운무와 사계를 거치면서 변하는 자연경관, 청량사를 감싸고 솟은 여러 봉우리들에 달이 걸리는 풍경과 삼각우총에 얽힌 전설등 스님의 청량사 자랑은 끝이 없으시다.

‘한때 꽃을 사모했으나, 지금은 이파리들이 사무친다’. 어디서 읽은 구절인지 기억에 없으나 봉우리마다 옷을 갈아입고 있는 중인 이파리들이 눈에 박힌다. 선연히 붉은 빛깔도 아니건만 이파리들에 시선을 빼앗긴 채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이 봉우리에 달이 뜨는 풍경을 상상한다. 아무리 애써본들 빈약하기 그지없는 상상이다. 여기 청량사 달뜨는 풍경에게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으로 남겨두고 발걸음을 옮겼다.

정혜자 mirabohj@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