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희기자의 인도문화 탐방> <4>죽음을 기다리는 집
꺼져가는 생명 자비의 손길로 돌봐

죽음을 기다리는 집 깔리사원으로 가는 길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캘커타의 수호신인 깔리여신을 모시는 깔리사원 옆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집'이 있다. 인도 탐방 여행 일정을 봤을 때 이 곳은 알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나를 이끌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집'은 한마디로 돌볼 사람이 없어 버려진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을 옮겨와 편히 죽도록 도와주는 자비의 손길이 닿는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울컥 나란히 놓여 있는 침대에 말 그대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주욱 누워 있거나 앉아 있다. 게다가 퀘퀘한 소독냄새와 다들 퀭한 눈을 뜨고 온 몸을 담요로 감싸고 미동조차 없는 그들을 보니 음산한 기운은 더해진다.
그 사이 사이를 봉사자들이 오가며 앙상한 뼈와 살갗만 남아 쇠약해진 그들에게 주사를 놓고 약을 먹이며 닦아주고 담요나 시트를 갈아 준다. 뭐라 말 할 수 없는 느낌이다.
여행객 입장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러 왔다는 것도 그렇고, 묵묵히 밝은 얼굴로 봉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자신이 무척 초라하게 느껴진다. 하루 정도 봉사를 해 볼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히려 폐만 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그것 또한 나 자신을 위한 행동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포기했다.
꺼져가는 생명들의 낮은 기침소리와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알아본 그 집의 사정은 대강 이러했다.
창고같이 생긴 방에 5∼6줄씩 놓여 있는데 들어서는 입구는 남자 방이고 헛청과 같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안으로 들어서면 여자 방이다.
이 곳에 상주하는 몇 명의 수녀들외에는 자원 봉사자들이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서면서부터는 일본·미국 등 세계각국에서 학생들이 끊임없이 봉사를 지원하고 있으며 그들의 일손을 돕고 있다.
이 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는다는 한국의 한 수녀는 “세계 곳곳에서 보내오는 성금으로 `죽음을 기다라는 집이 운영된다”면서 “이들의 인권을 위해 사진 촬영은 허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흐릿한 눈동자로 무언가를 갈구하는 이들의 모습은 하루를 더 살고 싶어하는 욕심보다 다가오는 누군가 지켜봐 주는 곳에서 죽음을 평온하게 맞이하고픈 눈빛이다.
말로만 사랑이 어떻고 자비가 어떤 것이라고 떠벌리기보다는 실제로 죽어가는 사람을 편히 죽도록 보살피는 일이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도리고 이웃된 의무가 아니겠는가. 자비를 몸소 실천하는 그들의 선행을 우리는 기리고 본받아야 할 것이다.
어려움과 고통을 함께 나누어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 될 수 있다. 우리도 언젠가는 자기 차례가 오면 그 죽음 앞에 마주 서야할 그런 존재이기에…
다음으로 무거운 마음으로 이동한 장소는 캘커타 수호여신인 깔리가 모셔진 깔리 사원이다.
깔리사원엔 어떤 유래가 숨겨져 있을까.
지금의 사원은 1809년 세워진 건물로 사원에 들어가려는 사람들 행렬이 장난이 아니다.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를 상황이다. 겉에서 사진이나 찍을까 했는데, 누군가 일행에 다가 와 사원에 들어가려면 자길 따라 오라고 한다. 분명 사원을 안내하고 돈을 뜯으려는 수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운이 좋으면 살아있는 염소를 제물로 바치는 장면을 볼 수 있다는 말은 솔깃했다.
사원에는 정문 외에도 옆쪽 출입구가 있어 줄을 서지 않고 들어갈 수 있다. 문제는 사원 안에서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것. 온갖 오물로 넘쳐 나는 사원 바닥을 맨발로 걸을 생각을 하니 참담해졌다.
`그래, 여기 온 것은 이 인도 문화를 맛보기 위함이다. 한번 눈감고 저질러 보자'…
이렇게 내 자신을 설득한 끝에 양말을 벗어 던졌다. 결국 신발을 맡겨두고 호객꾼을 따라 사원을 돌아다녔다. 사원 마당을 30분쯤 도니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깔리 여신에게 바치는 제물은 다름아닌염소다. 자신의 죽음을 아는 듯 울어대는 염소들의 비명소리는 여전히 귓전에 맴돈다.
깔리신을 보고 나니 호객꾼이 사원 옆의 공중 목욕탕과 비슷한 곳으로 끌고 간다. 네모난 수영장 같은 곳인데 갠지즈 강에서 사람들이 하듯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하고 그 물로 입도 헹군다. 여기서는 사진을 찍어도 된단다. 사진을 다 찍고 나니 이번엔 신성한 나무라며 그 쪽으로 끌고 가 소원을 빌라고 향을 피워주고 손목에 실을 감아준다. 그러더니 마침내 속셈을 내보인다.
자신의 안녕과 가족들의 행운을 빌면 소원을 이루어진다나?
지금까지 관념적으로 막연히 이해하고 있던 종교의 본질이 따뜻한 가슴에 있음을, 일상적인 자비의 실천에 있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