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세 마리 짐승을 다스려라"
-대원사에서 티베트 탱화 그리는 라상 부부
"한국어를 모르는 것이 가장 힘듭니다."
보성 대원사 티베트박물관 벽면에 탕카(티베트 절의 벽화나 탱화)를 그리고 있는 라상(32), 츠링라무(31) 부부. 달라이 라마 초상과 벽걸이용 탕카가 걸려있는 방에서 만난 그들의 첫인상은 순박한 우리 이웃같다. 욕심이 없는 맑은 얼굴, 잇속이라고는 없을 것같은 때묻지 않은 인상이다.
지난해 11월 대원사측의 초대로 인도에서 건너온 지 2개월됐다. 1년간 머무를 예정인 이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 조금 불편할 뿐 사람들이 친절하고 티베트 문화에 관심이 많아 기쁘다고 소감을 말한다.
이들을 초대한 보성군 문덕면 천봉산에 자리한 백제고찰 대원사(주지 현장스님)는 정신적 영적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티베트 문화를 보존하고 알리기 위해 지난해 7월 티베트 박물관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관했다. 개관 이후 티베트 문화를 알리기 위한 행사들을 꾸준히 치러오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박물관 벽면에 탕카를 그리게 된 것. 석가모니의 말씀이나 나를 되돌아보는 교훈적인 내용들을 담는다.
"한국에서 탕카를 그리게 돼 기쁩니다. 중국의 침략으로 티베트 문화가 말살되고 파괴되어가고 있습니다. 서구에서도 진행되고 있듯이 티베트 바깥에서 보존되지 않으면 티베트 문화는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어, 한국에서의 이 작업이 더욱 의미있습니다."
라상(拉桑)은 재미있어서 11세 때부터 탕카를 배우기 시작했다. 88년부터 4년간 인도에서 탕카를 공부했고, 현재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왕궁화가'다. 티베트에서는 부처의 세계를 표현한다하여 탕카를 그리는 '불모(佛母)'들을 존경하며, 수행의 중요한 부분이기도해 예전에는 출가한 스님들이 그렸다. 요즘에는 보통사람들도 그릴 수 있다. 라상은 출가하지 않았다.
탕카를 그리는 일은 굉장히 섬세하고 지난한 작업이다.
우선 그리려는 그림을 실물크기로 준비한다. 연필로 밑그림을 그린다. 밑그림은 본존부터 그려야 하며, 불상 부분 부분의 알맞은 비율 등 그리는 순서나 방법들은 규칙이 정해져 있다. 연필 밑그림위에 다시 먹선을 그린다. 그 다음 채색하기-바림질(운염)하기-마무리 먹선 그리기를 하고, 얼굴이나 눈은 마지막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는 뜻에서 검정색으로 눈썹이나 눈의 테두리를 긋고 눈동자를 찍어 넣어 최종 마무리를 한다. 화룡점정이다.
"아주 가는 붓을 사용해 부동자세로 숨을 멈추고 그려야 되는 먹선 그리기가 특히 어렵습니다. 세밀한 집중력이 요구됩니다."
라상은 탕카 그리는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렵지만 '재미'있어서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석가모니 벽걸이<사진 오른쪽>. 청황적백흑 오방색을 사용한다. 빨강과 주황은 출가
한 스님들이 입는 색. 길게 늘어뜨린 두 천은 바람이 불었을 때 흔들리지 말라는 의
미이며, 그 늘어뜨린 천에 가려 보이지 않는 해는 차별없는 마음을 배우게 해주고, 달은
성내는 마음을 정화해준다. 구름 위의 연꽃단은 욕심이 없는 청정한 마음을 상징한다.
티베트인들은 이런 탕카 벽걸이를 방안에 걸어두고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
한다.
아내 츠링라무(次仁拉姆)의 아프리케 작업도 꼼꼼하고 세심하게 집중해서 해야 하기는 마찬가지. 츠링라무가 하고 있는 작업은 달라이 라마를 아프리케로 만드는 것이다. 대략 120×150cm 크기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3개월이 걸린단다. 1시간에 작은 연꽃잎 대여섯잎 완성할 정도로 오랜시간 정성들여야 가능한 일. 골무를 끼고 낚시줄에 가는 실을 감는다. 티베트에서는 낚시줄 대신 마를 사용하나 인도에서는 마를 구하기 어려워 낚시줄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렇게 만든 실을 밑그림 형태를 따라 바느질해서 붙인다.
이 작업도 핵심은 부처의 눈. 눈만 완성하는데 4일이 걸린다. 실제 흰자위와 모세혈관까지 표현되어 있으니 그 섬세함에 기가 질릴 정도이다.
"작업을 하는 동안 몸가짐 마음가짐을 불심으로 다스립니다. 특히 그려달라고 주문한 사람들의 정성과 소망을 잘 담으려고 마음을 다합니다."
라상부부는 아침 6시30분께 일어나 라마의 초상과 탕카 앞에 향을 꽂고 기도를 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식사후 염주를 세면서 불경을 외우고 따로 선생이 없이 한국어 공부를 한다. 날이 좋으면 오전9시부터 탕카를 그린다. 오후 5시께 일을 마무리하고 저녁을 먹는다. 처음에는 세끼니 절에서 함께 공양을 했으나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는 이들에게 밥이 부담스러워 매일 저녁식사는 직접 수제비를 끓여 먹는다고 한다. 저녁식사후엔 산책도 하고 배드민턴도 치고 텔레비전도 본다. 잘 이해못하지만 가장 재미있게 보는 프로그램은 MBC에서 오후 8시25분께 방영하는 일일드라마. 밤10시 정도에 잠자리에 든다.
완성된 탕카 '사이좋은 형제들'<사진>은 부처님이 자기 이익만을 챙기려는 어린 스님들에게 웃어른을 섬기라는 교훈을 주고자 한 이야기이다.
옛날옛적, 히말라야 산기슭의 큰 반얀나무 아래 자고새와 원숭이와 코끼리가 살고 있었다. 세 마리 짐승은 서로 나이가 많다고 우기면서 싸웠다. 코끼리가 먼저 자기가 어릴 때 그 나무가 아주 작았다고 하면서 자기 나이가 많음을 자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원숭이가, 그 나무가 작은 새싹이었던 것을 보았다고 으스대면서 말했다. 마지막으로 자고새가 말하길, 그 나무가 씨앗이었을 때 삼켰는데 그 씨앗이 똥으로 나와서 싹이 튼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하여 자고새가 가장 큰 형님이 되었고, 숲속 동물들 사이에는 평화가 찾아오게 되었다.
라상이 현재 그리고 있는 여섯 갈래의 중생세계, 육도윤회도.<사진>
티베트 절 어귀마다 그려놓은 벽화다. 생명의 수레바퀴라고 일컫는 이 그림은 욕심, 성냄, 어리석음의 세 가지 독으로 선업과 죄업을 쌓고 그 결과로 끝없이 여섯갈래 세계를 윤회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맨 가운데 동그라미를 보면 세 마리 짐승이 서로 꼬리를 물고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다. 수탉은 탐냄과 애욕, 독뱀은 원한과 분노, 돼지는 어리석음을 뜻한다. 바로 이 세 마리 짐승이 사람의 마음속에 살면서, 여섯 갈래를 떠돌며 괴로움을 겪게 하는 뿌리가 된다.
그림 가운데 있는 여섯 개 그림은 여섯 갈래의 윤회세계를 뜻한다. 천상세계-사람세계-아귀의 비참한 세계-지옥의 세계-축생의 세계-아수라세계.
불교의 가르침에서는 현실세계에서 착한 일을 하는 것보다 윤회하는 세계에서 벗어나 윤회하는 중생들을 구해주는 일을 으뜸으로 친다. 어리석은 사람이 윤회에서 벗어나는 열두 가지 인연법칙이 있는데 그것을 십이연기라 한다. 육도윤회의 여섯 개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열두 개의 그림은 십이연기법을 상징한다.
임정희 기자(oksusu@jeonla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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