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공양.소리공양

 

글.소리공양 보기좋은 글공양과 아름다운 소리를 공양하세요!

HOME > 만남의 장 > 글.소리공양

외로운 황혼

하얀연꽃

 

나 떠나는 날은

먼저 간 아내와 어머니를 벅차게 만나는 날이다.

 

 

성우 배한성

 

작년 4월 어머니가 소천 하셨는데 야속하다 싶을 만큼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평생을 우리 모자관계가 평탄치 않았던 탓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유별난 분이었다. 서울여상 재학 시절에는 교복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처럼 허리를 잘록하게 고쳐 입으셨다. 몰래 영화관에 갔다가 담임 선생님과 마주쳤던 모험담을 일인 다역을 넘나드는 연기력으로 들려주시기도 했다.

 

끼와 개성을 자랑하던 어머니 삶이 반전을 맞은 것은 나와 동생을 두고 월북하신 아버지가 전쟁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이후였다. 갑자기 닥친 풍파 앞에서 어머니는 너무도 유약했다. 중학생 때부터 내가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했지만, 단지 그래서 어머니에 대해 애증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모성결핍이라고 해야 할 만큼 당신 감정만 앞세우시던 어머니에 대한 아쉬움은 평생 섭섭함으로 이어졌다.

 

장례식 내내 평정심을 유지했던 내가 눈물을 쏟은 것은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면서였다. 어머니 지갑 속에는 지갑만큼이나 오래된 내 사진이 한 장 들어 있었다.

 

조실부모한 당신도 어머니 사랑이란 걸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엄마 역할을 해내야 했고 종종 강요받으면서 무척이나 버거웠을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그저 당신만의 서툰 방식으로 동생과 나를 사랑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못난 노년의 아들과 소녀 같았던 노모의 이별은 그렇게 허망함과 따스함을 오가는 묘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어머니는 그렇게 미련했던 나의 앙금을 거두어 가셨다.

 

피곤한 것이 회복 되는 것은 예전 같지 않게 느껴져도 나이 들어 서글픈 것보다는 70년 넘게 버텨준 내 몸이 고맙기도 하고 지금에 충실하면 된다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요양 병원에 계시던 어머니를 뵈러 갈 때마다 내가 그곳에 누워있는 상상을 한다.

 

나는 백 살에 도전할 만큼 장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본 적도 없다. 죽음은 불행이 아니고 삶의 일부분임을, 그리고 반듯하게 찍힌 삶의 마침표는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관계를 연결해 주는 쉼표가 된다는 사실을, 어머니와의 이별을 겪으면서 알게 되었다.

 

나 떠나는 날에는 하늘이 열린 듯 청량한 소낙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소나기 그치고 아름다운 무지개가 걸릴 때쯤, 먼저 가 있는 어머니와 딸아이들의 엄마를 벅차게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찬바람이 불어오니 떠나는 벗들의 부고가 여기저기서 날라 온다.

다음에는 나일까? 언제쯤일까?

 

친구여! 잘 가시게!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었다.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멀리서 빈다. / 나태주 -

 

그렇게 빌던 나인데 지척에 있으면서 어디 아프지나 않은지 가끔 찾아보지 않아 가슴이 미어진다.

 

외로운 황혼

 

닿을 수 없는 거리는 그리움을 낳고, 메울 수 없는 거리는 외로움을 낳는다. 품을 수 없는 것들은 사무침으로 다가 온다. 가까이 있다가 멀어지면 그 거리만큼 눈물이 흐른다.

 

이별의 강은 그래서 마르지 않는다. 한 생의 황혼에 서면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가까울수록 이별의 슬픔은 배가(倍加)된다. 여든을 눈앞에 두고 상배(喪配)한 김춘수 시인1922~2004)의 사무침이다.

 

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 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 사람아!

갑자기 왜 말이 없나!

 

오래 전에 사별했지만 아내는 아직도 밥상을 차려놓고 어디로 마실 나간 것 같다. 불러도 대답이 없자, 노시인은 풀이 죽고 가슴엔 빗발이 퍼붓는다.

 

노인 5명 중 하나는 만나는 사람도 없이 외톨이로 살고 있다. 대화의 상대가 끊긴 노인들은 살아도 죽은 듯이 외로운 말년을 보낸다. 죽음만이 영원한 이별은 아니다. 살아도 만나지 않으면 이미 사별한 거나 다름없다.

우리 사회는 점점 사람과 사람 사이가 멀어지고 있다.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이웃과의 거리도 갈수록 멀어져만 간다. 가까운 이가 멀어지면 그 눈물은 배가 되어 흐른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에 이 땅의 황혼이 울고 있다.

 

단 우물이 먼저 마른다.

 

여기에 송곳이 다섯 개가 있다면 이 중에 날카로운 것이 있는데 가장 날카로운 것이 반드시 먼저 무뎌질 것이다.

 

여기에 칼이 다섯 자루 있다면 이 중에 날이 선 것이 있는데

가장 날이 선 것이 반드시 먼저 상할 것이다.

 

이것이 좋은 나무가 먼저 베이는 까닭이다. 그래서 먼저 가신 것인가?

 

그쪽 동내 형편이나 알려주시게.

 

 

 

이 게시물에 덧글쓰기
스팸방지 숫자 그림
* 그림의 숫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