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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에게 딸을 주어 무인의 길로 이끈 보성군수 방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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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의 청년 이순신에게 딸을 주어 무인의 길로 이끈 보성군수 방진 이야기

이순신의 명량대첩을 그린 영화 명량이 관객 1700만을 돌파하였다.한국 영화로 앞으로 이 기록을 깨뜨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부산.거제.남해.통영.여수등 남해안에는 수많은 이순신 관련  유적과 이야기들이 전해 진다.그러나 보성과 관련된 유적과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은 없다.

보성의 열선루는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가를 읊은 성지이다.보성군수 방진은 21세의 청년 이순신의 인물됨을 알아 보고 자신의 외동딸을 주어 경제적 후원을 해주었다.

활의 명사수이며 훌륭한 무인이었던 방진은 자기의 사위를 무과를 보아 무인의 길로 이끌어  주었다.보성군수 방진은 이순신을 키워낸 일등공신이다.

정유년 1597년 8월 이순신 장군은 보성 열선루에서 선전관 박천봉이 가져온 한통의 서신을 받았다.

거기에는 선조의 어명이 담겨 있었다.‥수군의 전력이 너무 약하니 권율의 육군과 합류하여 전쟁에 임하도록 하라.‥는 내용이었다.

몇날 몇칠을 뜬눈으로 밤을 새우던 장군은 온겨레의 심금을 울리는 한산도가를 읊는다.

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올라
큰 칼 불끈 쥐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들려오는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정유 중추 이순신 읊음

정유 중추는 1597년 8월 15일이다.난중일기는 이시기에 이순신 장군이 8일동안 보성관아에 머물렀으며 열선루에서 한산도가를 읊었음을 알수 있다.

현재의 보성군청은 보성관아가 있던 곳이고 보성초교 뒷길로 올라가면 예수 재림교 보성교회가 있다.이 교회 부근이 열선루 자리이다.지금 보성군에서는 예산을 세워 열선루를 복원하고 있다.

장엄한 열선루가 국민 교육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한산도가를 읊은 이순신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선조에게 장계를 올린다.

",바로 이것이 신이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죽을 힘을 다하여  싸우면 적의 진격을 저지할 수 있습니다.비록 저의 전선수가 적다고 하나 보잘것 없는 신이 아직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 여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보성은 이순신의 처가집이며 지혜로운 아내가 나고 자란곳이다.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수 있도록 마음의 서원을 굳힌 곳이다.뿐만 아니라 보성군 조성리 조양창에서 많은 군량을 확보하고 군기.수군.전선등을 정비한곳이다.

아산 현충사의 이순신 고택은 사실 장인 어른 방진의 집이었다.외동딸과 결혼하여 방진의 저택이 이순신 고택이 된것이다.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순신에게 우의정이 증직되었다.

그리고 그의 아내 방씨를 정경부인으로 봉하면서 내린 ,이순신 처 방씨 고신 교지,는 보물 제 1564-8호로 지정 되었다.

이순신은 아내 방씨와의 사이에서 이회.이울.이면.의 세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다.

보우대사가 승과를 개설하여 서산.사명대사 같은 명승을 배출하여 임진왜란에서 수많은 백성을 구하였다.

보성군수 방진은 청년 이순신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사위를 삼아 경제적인 후원을 해주고 훌륭한 무관이 되게 이끌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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