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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현실정치에 좌절한 선비들의 지조로 남은 소쇄원의 나무들

대원사

현실정치에 좌절한 선비들의 지조로 남은 소쇄원의 나무들

 

글·사진 / 고규홍(나무칼럼리스트)

 

오래 전 수명을 다했으나, 여전히 도도한 자태로 남은 소쇄원 측백나무 고사목
소쇄원 돌담에 잘 어울린 동백 한 그루.
소쇄원 정원 한가운데에 선비들의 절개처럼 도도하게 서 있던 한 그루의 소나무. 지난해 말 삶을 마쳤다.
죽기 전 소쇄원 소나무의 늠름한 기개. 이제 이 소나무의 푸르름은 볼 수 없지만, 여전히 소쇄원을 지키는 나무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정원인 전남 담양의 소쇄원을 지키는 양재영 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소쇄원의 낙락장송이 이승에서의 삶을 다했다는 슬픈 소식이었다. 양재영 님은 소쇄원의 홈페이지에도 소식을 적어 올렸다. 거기에 그가 한 마디 했다.

 
먼저 그는 이 소나무는 그 동안 시와 그림, 음악의 대상으로 행복하게 살았던 나무라고 썼다. 이어서 그가 소쇄원을 지켜오는 동안 소쇄원 안에서 죽은 나무들은 이 나무를 포함해 20그루가 넘는다고 했다. “수명을 다해 죽은 나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무자비한 발길에 의해 죽은 나무들도 있다.”고 했다. 사람과 나무의 어우러짐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겠다.

 
참 많은 사람들에게 벗이고 스승이었던 나무 한 그루가 그렇게 지난해 말 삶을 마감했다. 소쇄원의 상징이었던 나무라 해도 될 큰 나무다.
소쇄원은 460년 전 조광조 문하에서 공부하던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지은 정원이다. 소쇄원 조성을 마치고 양산보는 스스로를 ‘소쇄옹’이라 하고, 자식들에게 ‘이 정원을 남에게 팔거나 누구 한 사람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하라.’고 일렀다. 속세를 등진 채 자연합일(自然合一)의 삶을 살았던 그는 이곳에 은거하다가 쉰다섯의 나이에 삶을 마쳤다.


양산보가 죽은 뒤 소쇄원은 그의 자손들에 의해 잘 보존됐다. 정유재란 등 적잖은 참화를 겪었지만, 대를 이은 후손들의 정성에 의해 이 땅의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남았다. 사람과 자연이 얼마나 아름답게 어우러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모범임에 틀림없다.
오래된 큰 나무는 지금 소쇄원에 많지 않다. 소쇄원의 경관을 읊은 시문(詩文)에는 매화, 대나무를 비롯해 소나무, 느티나무,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오동나무, 벽오동, 버드나무, 배롱나무, 단풍나무, 치자나무 등 다양한 나무가 등장한다. 그 나무들이 여태 남아 있지는 않지만, 지금의 소쇄원에도 적지 않은 나무들이 있다.


시작은 어둠을 드리운 대숲에서 비롯된다. 개울물이 졸졸졸 흐르는 옆으로 하늘을 가릴 듯 치솟아 오른 대숲은 이곳 소쇄원을 찾는 모든 사람을 압도한다. 하늘로 치솟은 이 대나무숲을 향해 조선시대 문인 김인후는 ‘높은 마디에 실린 구름의 형상’이라고 노래했다.
대숲이 끝나는 자리에서 화들짝 놀랄 만큼 환하게 옛 정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방금 지나쳐온 대숲의 어둠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울창한 정원 숲 사이로는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연못이 펼쳐지고, 그 곁으로 느티나무, 단풍나무, 오동나무, 산수유나무, 동백 등 그 종류를 미처 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나무들이 울긋불긋 정원을 수놓았다.


대봉대 곁에 서면, 맞은편의 광풍각 제월당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제월당 옆으로 조성한 화계(花階)에 말라 죽어 껍질을 허옇게 드러낸 나무 한 그루가 하늘을 찌르고 섰다. 뒷담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송시열이 ‘소쇄처사양공지려(瀟灑處士梁公之廬)’라고 쓴 글씨 판이 선명하다. 물기 없이 바짝 마른 채 온통 하얗게 변해버린 줄기 색이 을씨년스럽다. 소쇄원의 역사를 가장 잘 아는 나무로 보이지만, 이미 오래 전에 생명을 다했다.


이 오래된 고사목과 대봉대 사이, 바로 소쇄원의 가장 가운뎃자리가 앞에서 이야기한 죽은 소나무가 있던 자리다. 소쇄원 안에서 가장 도드라져 보이던 나무다. 소쇄원을 처음 지을 때 심은 나무는 아니지만, 마치 처음부터 있었을 것만 같은 낙락장송이었다. 현실 정치에서 물러났지만, 자존과 절개를 굽히지 않았던 선비들의 자존심처럼 도도하게 서 있던 나무였다.
정원 한가운데 우뚝 선 소나무 한 그루는 소쇄원의 어느 곳에서도 빤히 내다보였다. 마치 소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정자를 배치한 듯한 꼴이다. 지조처럼, 절개처럼 도도한 자태로 서 있던 한 그루의 소나무는 그렇게 당대 선비들의 희망과 용기, 혹은 자존심으로 소쇄원을 꿋꿋하게 지켜왔다. 도도하고도 아름다운 나무의 일생이 이제 끝났다. 숱하게 드나들었을 사람들의 손길, 발길을 이겨내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지금의 양재영 님을 비롯한 소쇄원 지킴이들은 끝내 이 정원을 나무와 사람, 자연과 사람이 멋지게 어우러진 정원으로 지켜낼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자연과 사람의 합일(合一) 정신을 실천해 온 양산보의 후손들처럼 말이다. 조금의 의심도 없다. 죽은 나무조차도 소쇄원에서는 아름다울 수 있음을 그들은 보여줄 것이다. 소쇄원이 끝내 아름다울 수 있는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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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귀농 하눌타리 원문보기 글쓴이 : 낙엽송 강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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