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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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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끝나고 조선과 일본의 화평을 위해 호랑이굴에 뛰어든 사명대사 이야기

 

 

   선조 37년 일본의 정권을 장악한 도꾸가와 이에야스는 조선과 화친을 희망하며 수신사를 보내줄 것을 요구하였다.

조선 조정에서는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사명대사를 불러 임무를 맡겼다.

 

    유가의 조정 대신들은 불가의 천한 승려에게 국가의 막중한 임무를 맡긴데 불만을 터뜨리면서 아무고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 본 사람이 조정의 분위기를 비웃듯 노래하였다. 묘당에 삼정승이 있지만,

국가의 명운이 한 승려의 귀환에 달려 있도다. 선조 37년 1604년 8월 20일 사명대사는 부산 다대포항에서 대마도를

바라보면서 시 한 수를 읊는다.

 

조그만 배를 만리에 모니

총알만한 외로운 섬이

하늘에 닿을 듯 하도다

황하의 근원은 이 하늘의 서북쪽인데

무슨 일로 동쪽으로 박망사를 띄우는고

 

 

당시 사명대사 나이는 62세였다.

장군의 기상과 담대한 성격으로 전장을 누비고 적장과 담판도 여러차레 하였다.

적군인 일본에 가서 임무를 완수 하는 일은 용기와 자비심 그리고 깊은 지혜가 없이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음은 대마도에 도착하여 배 안에서 지은 시 한 편이다.

 

근래 수염이 세기만 하고

해마다 희어 지는데 8월 남쪽바다에 뗏목을 띄운다

 

팔을 굽히고 허리를 꺾는 일은

내 본 뜻은 아닌데, 내가 어찌 머리를 숙여 원수의 집에 들어가나

 

원수를 꾸짖어 하늘을 쳐다보며

말없이 앉아 있으니 침침한 바람은 외로운 배에 비를 뿌리도다

 

십년 생사는 관산의 달이더니

음흉한 놈들의 나라는 가을이로구나

 

한 여름 바다의 성난 물결은 쉴 날이 없는데

부평초 같은 이 신세는 어느 때나 쉬게 될까

 

돌이켜 생각한다

백옥 같은 천봉 우리 속에 원숭이와 학과 더불어 마음대로 살던 때를

 

 

     치통을 앓으며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요즘은 치과에서 치료를 받지만 조선시대 치통은 어떻게 치료했을까?

대마도에 도착해서 첫날 밤을 치통으로 잠 못이루며 남긴 사명당 시가 전한다.

 

대마도 객관에서

 

왼쪽 두째 어금니가 아려서

배개에 엎드려 신음한다

 

병으로 빈관문을 걸어 잠그고

생어금니 앓으며 지난 일 생각하니

 

평생에 잘한 일 하나

없었도다

 

머리 깍고 중이 되어

언제나 길에만 있었고

 

수염은 속세를 본받았지만

집 한 채도 가진 것 없도다

 

노을과 안개를 벗하는 일도 오래가지 못하였고

자성을 찾는 공부도 채찍질 하지 못했도다

 

나아감도 물러섬도 두 길을 모두 그르쳤는데

어찌하여 흰 머리로 또 배를 탔는고?

 

 

사명대사가 치통을 앓으며 남긴 시 한수가 오늘의 불자들을 깨어나게 하는 장군죽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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