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님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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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암의 본디 이름은 자정암이다.송광사 16국사중 제7대 자정국사가 머문 암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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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암이 있기 전에 자정암이 있었다.

불일암의 본디 이름은 자정암이다.송광사 16국사중 제7대 자정국사가 머문 암자이기 때문이다.

불일암 오른편 언덕에는 자정국사 사리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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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암은 1708년 시습(時習)·이징(以澄)스님이 증수하였다.1765년에 탁명(卓明)스님이 창건한 공루는 1929년 해체되었고, 1866년 승허(乘虛)스님이 창건한 칠성각(七星閣)은 이듬해 의잠(宜岑)스님이 단청했다,

1891년에는 월화(月和)·계암(桂庵)·용선(龍船)스님이 정문을 중수하고. 1917년 설월(雪月龍燮 1868~1938)스님의 중수, 192l년 서월(瑞月奇文)스님의 서익실(西翼室)중건과 설월스님의 뒷방 수선 이후 6·25로 퇴락되었다.

한동안 칠성스님이 자정암을 지키다가 떠났다.

비어있는 암자를 법정스님께서 돌아보시고 따사로운 남향집에 향기로운 매화가 피어나고 있었다.샘물을 떠서 마셔보니 맛이 좋았다.

서울 봉은사 다래헌 생활을 정리하고 송광사 불일암으로 내려온 내력이다.

그전에 있던 자정암건물을 헐어내고 쓸만한 목재를 골라 식당채 하사당을 지었다.

불일암 본채는 14평으로 스님께서 직접 설계하였다.건축에 필요한 목재와 기와는 큰절 농막에서 등짐으로 하나씩 짊어지고 땀흘려 옮긴것이다.

1975년 가을 음력 9월 2일 효봉스님 기일에 맞춰 낙성식을 가졌다.불일아이전 자정암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사진도 남아 있지 않다.

법정(法頂)스님이 중건하면서 자정암을 내리고 불일암 편액을 걸었다.

1996년 본채 상부를 해체 중수했다. 1986년에 신축한 해우소도 1997년 해체 복원되었다.

지금의 본채 자리에는 칠성각이 있었고. 옛날 본채는 밭과 요사채 자리에 있었다.

주석했던 스님들의 면모를 보면 1845년부터 1853년까지는 기봉(奇峰藏旿 1776~1853)스님·1860년대의 연봉(蓮峰鳳麟 1833~1912)스님·1877년 경해(鏡海官一 1843~1928)스님 1879년 통허(洞虛致性1844~1901)스님· 1886년부터 다음 해까지 원해 (圖海鳳玉1850 ~1888)스님·1922년부터 1927년까지 경명(景溟泰敏 1858 ~?)스님·1925년 계암(桂庵應寬)스님. 1926년 연해(蓮海)스님·1929년 호붕스님을 찾을 수 있다.

1879년 열었던 만일회(萬日會)는 1882년 큰 절의 보제당(普濟堂)으로 옮겼다.

1835년에 본사 선원 구역인 상대의 칠전(七殿)에서 조성하여 봉안했던 후불탱화(금어 益贊)는 부도전에 이안되었다가 1995년 박물관으로 옮겼다.

1867년에 그린 칠성탱화(금어 龍院奇衍 就善 妙英) 3폭은 본사 관음전에 이안된 후 역시 박물관으로 옮겼다.

1879년에 그려진 지장탱화(금어 雲波就善·天禧·敏禹)도 송광사 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사진 1번 16국사중 제 7대 자정국사 진영이다.

사진 2. 자정국사 묘광지탑에 봉안했던 청자사리함이다.

사진 3번 불일암 오른편에 자정국사 사리탑이다.

사진 4.5.6번 불일암 본채.식당채.해우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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