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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건봉사에서 열린 만일염불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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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건봉사에서 열린 만일염불회 이야기

 

 

금강산 건봉사 등공대 부도탑앞에서 광주.전남 포교사단 회원들이 정토예경문을 올리는 모습이다.

 

건봉사는 31본산의 하나이며 건봉사.표훈사.신계사.유점사등 금강산 4대 사찰중에 으뜸가는 사찰이었다.

 

758년에 신라 발징화상이 중심이 되어 만일염불결사를 발원하였다.

 

이 생에서는 맑은 복을 누리고 육신을 벗으면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태어나서 성불하기를 서원하였다.발징화상의 고귀한 뜻을 받들어 31명의 스님들이 염불만일결사에 동참하고 1820인의 신도들이 함께 염불정진하면서 결사대중들을 후원하였다.

 

그중 120인은 철따라 의복을 보시하고 1700인은 음식을 마련하여 염불수행자들을 봉양하였다.

 

두문불출 산문밖을 나서지 않고 31명의 스님들이 27년 5개월 동안 긴 세월을 오직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고 염불삼매를 이루어 육신 그대로 극락에 태어난 한국불교의 으뜸성지이다.

 

만일 염불회는 우리나라에만 전해져 오는 독특한 수행법이다.

 

787년 염불만일을 회향하는 날 서쪽하늘이 열리고 31인의 염불행자들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쳐 날아 올랐다고 한다.1.5키로 지점에서 육신을 버리고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세계로 바로 왕생하였다. 매미 허물 벗듯이 육신의 옷을 벗고 극락에 왕생한 터에 세운 부도탑이 건봉사 등공탑이다.

 

그 뒤 염불만일회를 후원했던 1820인도 차례로 극락왕생하여 건봉사는 한국 정토수행의 최고 성지이며 아미타불 염불도량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신라때 발징화상에 의해 시작된 염불만일회는 건봉사에서만 5회나 계속되었고 19세기 조선불교에서는 염불수행이 대중화되면서 많은 사찰에서 염불만일회를 열어 염불수행이 조선불교를 주도하였다.

 

고성군 최북단에 위치한 건봉사는 6.25때 미군의 폭격으로 불타고 민통선 안에 위치하여 오랫동안 복원되지 못하였다.

 

80년대 후반 건봉사구역이 민통선에서 해제 되고 불치사리를 봉안한 공덕으로 많은 참배객이 몰리면서 빠르게 복원되고 있다.

 

아미타불 뛰어난 공덕

중생중생 인연 있으라

나죽어서 이 몸떠날때

빛살되어 정토에 나리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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