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5월 3일 경남 고성의 올리베따노 성분도 수도원 수사님들이 금식기도로 모은 성금 500만원을 독거노인 도시락 공양에 써 달라고 원장 수사님이 대원사를 직접 방문해 주신 것입니다. 당시 여해동(살레시오) 원장 수사님과 이연학(요나) 수사님은 대희년 금식기도로 모은 성금을 보람있게 사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모든 수도원 식구들의 뜻을 모은 것 뿐이라며 수도원 식구들을 대신해서 좋은 일에 써 달라고 말씀하시며 부끄러워했습니다.
가톨릭 수도자들의 금식기도로 마련된 나눔과 사랑의 메아리는 저희 사찰의 불교신자뿐 아니라 지역사회에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수사님들과의 첫 만남은 92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유학 중이던 요나수사가 에우제니오 학장신부님(철학)을 모시고 잠시 귀국하였습니다. 학장신부님은 한국에 왔으니 한국의 전통문화인 불교문화를 체험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이 다리를 놓아 대원사에서 하루 밤을 머물며 산사체험을 한 인연이 지금까지 소중히 이어져 온 것입니다.

그 후 학장신부님은 로마에 돌아가서도 감사편지를 전해주셨습니다.
여해동, 이연학 두 분 수사님은 해맑은 얼굴과 순수한 마음씨, 풍부한 유머감각으로 우리는 금방 친구가 될 수 있었으며 불교승려 보다 더한 친밀감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씨앗은 2년 후 2002년 5월 5일 대원사 개산 1500년 기념 세계평화기원 종교음악축제로 커다란 꽃을 피웠습니다. 서양의 수도 전통에서 생겨난 아름다운 미사곡과 함께 그레고리안 성가가 산사의 저녁 노을 아래 퍼진 것입니다.
그 자리에 함께 한 1500여명의 대중들의 가슴 속에는 신성한 기쁨이 충만했으며 내면의 평화를 찾고 사랑으로 하나됨을 나눈 감동적인 음악회가 되었습니다.

그때 종교음악축제의 출연진을 보면 경남 고성의 올리베따노 수사님들의 그레고리아성가, 송광사 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의 범패와 저녁예불의식, 티벳트의 명상음악가 나왕케촉의 신비한 피리소리, 서울대 무용과 교수 이애주씨와 그 제자들의 모임인 한춤공동체에서 바라춤, 법고춤, 살풀이춤을 선보였습니다.
또한 이해인 수녀님께서 ‘평화로 가는 길목에서’라는 제목으로 축시 낭송을 해 주었으며, 복음성가가수 김정식씨의 평화의 노래가 1500년 역사가 깃 든 백제고찰 대원사 도량에 울려 퍼졌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때의 감동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보면 동서양의 영성 교류를 통해서 서로의 아름다움을 찾고 종교간의 우정과 화합과 협력을 다짐하는 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이 글은 교황청 한국 전교기구에서 펴내는 "땅끝까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