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님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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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성보박물관에는 훈민정음 창제 이후 가장 오래된 친필 한글문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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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상원사 중창권선문에 담긴 신미대사와 세조의 인연이야기

 

월정사 성보박물관에는...

어첩 상원사 중창권선문이 소장되어 있다.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되었는데 1464년에 훈민정음으로 필사된 문서이다.

보물 140호로 지정 받았으나, 한글 연구의 중요성을 인정 받아,

1996년 국보 제 292호로 승격된 고문서이다.

 

오대산 상원사 중창권산문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우리 성상께서 천명을 받아 다시 우리나라를 창조하시어 억조의 백성들이 편안하고,

온누리가 안영하여 크고 작은 모든 것이 천지의 은혜를 얻었습니다.

어리석은 중생들과 승려들 그 누가 은혜에 보답하려는 뜻이 없겠습니까?

오대산은 천하명당으로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성소하며 영험있는 현신이 자주 있어 왔으며

상원사는 더더욱 훌륭한 곳입니다.

저희는 의발에 담긴 것을 모두 털어 상원사를 중창하여 성상의 만수무강을 빌 곳으로 삼으려 하는데

전하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고 특별히 어명을 내려 아래와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스님들이 나를 위해 옛가람을 중창하려 하니 내 마땅히 그들을 도와 백성들을 널리 이롭게 할 것이다."

 

그리고 어의 몇 벌을 하사 하시고, 쌀과 무명과 토목의 비용을 보내주시어 위로는 성상의 만수무강을 빌고

아래로는 억만년의 큰 복이 전하여 한량없는 복으로 현재와 미래에 모두 유익함이 있기를 발원합니다.

 

신미대사가 직접 쓴 것으로 생각되는 오대산 상원사 중창권선문 한글 문서는 한글창제의 비밀을 밝혀 줄

소중한 문서이다.

 

세종, 문종, 세도 조선전기의 세임금 때 실질적인 왕사 역할을 하신 분이 신미대사이다.

신미대사의 역활과 활동은 세종 때 꽃이 피고, 세조 때 이르러 열매를 맺게 된다.

 

세종 때 만들어진 훈민정음은 세조 때 간경도감을 설치하여 불경을 우리말로 간행하고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합본하여 원린석보를 간행하였다.

해인사의 대장경을 인출할 때도 신미대사가 총감독을 맡았다.

신미대사의 상수 제자인 학조스님과 학열대사를 세조는 삼화상으로 부르며 공경심으로 받들었다.

신미대사가 속리산 법주사에 주석할 때는 세조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속리산 복천암까지 찾아가서

3일 간 법석을 열어 대사의 설법을 듣게 하였다.

그 당시 복천암에는 세종대왕이 복천암에 시주한 아미타삼존불이 모셔져 있었다.

 

세조가 속리산 입구에 도착했을 때, 소나무가 가지를 뻗고 있다가 세조의 가마 행렬이 다가오자

가지를 들어올렸다.

세조는 조선 국왕의 행차를 알아 본 소나무에게 정이품 벼슬을 내렸다.

법주사 정이품송의 유래이다.

 

복천암에서 세조는 자신의 고통을 하소연 하였다.

계유정난 살륙의 업보로 잠을 편히 자지 못하고, 악몽에 시달린다고 하였다.

또 피부에 종기가 나고 고름이 나와 악취가 풍기는 고통을 호소하였다.

 

신미대사는 살생의 악업을 참회하고 참회와 공덕의 정치를 부탁하였다.

공덕을 위해 부처님 정골사리를 모신 오대산 적멸보궁과 쇠락한 상원사를 중창하면 공덕을 이루고

가피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공덕 중 최고 공덕인 법공양을 위해 한문불경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많은 사람들이 읽고

지혜가 밝아지고 욕망의 수렁에서 벗어나게 하면 그 공덕이 전하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설법하였다.

세조의 상원사 중창은 복천암의 신미대사에게 청법순례를 통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1446년 훈미정음 반포 이후 18년 후에 훈민정음 문자로 쓰여진 신미대사의 필적을 통해 한글 창제의

비밀이 한가닥씩 밝혀지기를 바란다.

 

법주사 단풍이 좋을 때 세조길을 함께 갈으면서 한글창제의 비밀을 나누고 싶은 사람 있나요?

세조길을 함께 걷고, 훈민정음의 고향 복천암을 참배하며 새로운 문자가 완성된 것을 기념한

문장대(文藏臺)를 오를 것이다.

 

 

신미대사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전해지는 오대산 상원사 중창권선문이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정음으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고, 한문불경을 정음으로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분이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이 아닐까?

 

 

 

 

중창권선문 끝자락에 <부처님 제자 조선 국왕 이유>라고 쓰고 직접 서명을 하였다.

<이유>는 <세조>이다.

 

 

 

왕후와 세자 조정대신들도 상원사 복원 불사에 모두 시주하고 직접 서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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