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님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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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에는 백제 위덕왕의 아들 아좌태자가 그린 성덕태자상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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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에는 백제 위덕왕의 아들 아좌태자가 그린 성덕태자상이 모셔져 있다.

 

백제 시대에 남겨진 회화문화재 인물화는 국내에 한점도 없다.

 

국내에는 없지만 일본 궁내청에는 백제 아좌태자가 그린 성덕태자와 두왕자상이 있다.

 

흥미로운 백제의 역사를 전하는 아좌태자의 작품을 일본인 화가에게 모사복원을 부탁하여 대원사 아실암에 봉안하였다.

 

아좌태자는 누구이고 그는 왜 일본에 건너가서 성덕태자의 어진을 그려 후세에 전했을까?

 

여기 백제와 일본에 얽힌 흥미로운 역사를 소개한다.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성왕은 신라와 관산성 전투에서 포로가 된다.

 

그는 서라벌에 끌려가 갖은 모욕을 당하고 노비의 칼에 목이 잘린다.성왕의 목은 신라관청의 계단아래 묻혀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니게 하였다.그리고 목이 잘린 시신을 백제로 보냈다.

 

성왕의 아들 창은 울부짖으며 외쳤다.나는 출가하여 선왕의 명복을 빌겠다.ᆢ

 

백제의 왕업을 잇고 선왕의 복수를 해야 합니다.출가하는것은 불가합니다.창은 신하들의 만류로 성왕의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위덕왕이다.

 

위덕명왕은 문수보살의 분노존을 이르는 말이다.그는 목이 잘린 선왕의 육신을 다시 온전하게 받들기 위하여 생전 부왕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관음상을 조성하였다.

 

일본 호류지 몽전에 모셔진 구세관음의 모습이 백제성왕을 모델로 위덕왕이 조성한 그 불상이다.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 대향로는

바로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오신 구세관음 백제성왕전에 바친 대향로 이다.

 

지금은 일본과 한국에 따로 떨어져 있지만 다시 한자리에서 향공양을 올릴수 있는 기회를 준비하고 있다.

 

백제 위덕왕은 백제계 소가씨가 세력을 잡고 있는 일본에 대규모 사절단을 보낸다.

 

요즘 같으면 종합건설회사를 보낸 것이다.사원건축을 할수 있는 도편수.기와를 굽는 와박사.불상과 불화를 조성하는 불모.

불탑을 세울수 있는 로반박사등 뛰어난 기술인력을 파견하였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최초의 사원이 법흥사이다.법흥사는 원흥사로 이름이 한번 바뀌고 이제는 비조사로 불린다.

 

위덕왕은 법흥사 낙성식에 축하사절단의 대표로 왕자이며 화가인 아좌태자를 보낸다.

 

백제왕의 사신으로 일본왕궁에서 성덕태자의 영접을 받는다.아좌태자는 성덕태자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성덕태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두 손바닥을 만져보고 두 발바닥도 살펴보고는 다시 일어나 무릎을 끓고 두번 큰절을 올렸다.ᆢ크게 자비로우신 구세관음께서는 동쪽 해뜨는 나라에 오셔서 으뜸가는 가르침을 앞으로 49세까지 펴시면서 불법을 밝히고 연설하시게 됩니다.

 

이때 성덕태자가 지긋이 눈을 감으니 미간에서 번쩍하면서 밝은빛이 30자에 이를 만큼 길게 뻗쳤다.아좌태자는 무릎을 꿇고 다시 재배하였다.

 

성덕태자는 좌.우를 돌아보고 나서 말했다.ᆢ이곳의 나로 말하자면 옛날 사람인데 내 제자를 위하는 까닭에 이곳에 왔거늘 이제 와서야 고맙다는 말을 듣게 되는구나.ᆢ하고 말씀하시니 함께한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이 내용은 일본의 고문헌인 부상략기와 성예초에 기록되어 있다.

 

일본의 역사인물중에서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바로 성덕태자이다.

 

일본의 17조 헌법을 제정하고 유마경.승만경.법화경을 설법하고 태어나면서 합장하고 나무불.부처님께 귀의 합니다.고 외쳤다.

 

그는 주먹을 쥐고 태어났는데 주먹을 펴니 부처님 사리가 있었다.과거 만원권 지폐에는 성덕태자의 얼굴이 있다.

 

성덕태자는 백제에서 전해준 구세관음상을 평생의 원불로 모셨다.

 

1번 사진은 일본인 화가 가와세 요꼬가 그린 성덕태자와 두왕자상이다.대원사에 있다

 

백제성왕의 덕을 지니고 태어났다고 해서 성덕태자라고 한다.그는 전생의 자신의 몸인 구세관음상에 예배하면서 불경을 직접 설법하고 불법에 기초한 헌법을 제정하고 일본을 불교국가로 건설하였다.그는 배불파와의 오랜 전쟁에서 승리하고 오사까에 사천왕사를 짓고 태자 7사라고 부르는 일곱개의 사찰을 창건 하였다.오사까의 옛이름은 백제주였다.

 

성덕태자는 사랑하는 황후가 죽자 그 다음날 태자도 육신을 떠났다.아좌태자가 예언한 그의 나이 49세였다.

 

사진 2번 백제성왕을 모델로 제작된 구세관음상..일본 호류지 몽전에 있다.

 

백제대향로는 본래 구세관음 앞에 모셔졌다고 한다.어떤 연유로 구세관음은 일본으로 보내고 대향로는 수채구멍에 묻었다.

 

사진 3번 일본인 화가 가와세 요코이다.그는 교토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인도 라자스탄에 가서 세밀화 수업을 받기도 했다.대원사 티벳박물관 큐레이터로 근무하기도 했다.

 

성덕태자와 두 왕자상 모사복원은 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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