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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선교, 종교 화합

가톨릭 다이제스트

대담 | 박찬.수필가


출가 수행자들은 숨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세상보기를 새롭게 하라는 메시지를 여기저기서 내놓고 있다. 그 가운데 최근 우리 나라에서 유난히 울림이 큰 메시지를 띄운 수행자가 있다.
전남 보성군 문덕면 천봉산 깊은골, 이 두메산골의 작은 산사인 대원사에서는 지난 5월 개산 1500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세계평화기원 종교음악축제’가 열렸다. 종교간의 우정과 화합과 협력을 도모하는 자리가 된 이 행사에서는 천주교 고성 올리베따노 수도원 수사들, 송광사 학인 스님들, 티벳 출신의 세계적인 명상음악가 ‘나왕 케촉’ 등이 참여했다. 산사의 저녁 노을 속에서 동서양의 수도 전통에서 생겨난 아름다운 미사곡과 예불의식에 나왕 케촉의 신비한 피리소리 협연이 어우러져 인종과 종교의 경계를 넘어 모든 사람들이 내면의 평화를 찾고 사랑을 나눈 감동적인 음악회가 되었다. 이 종교음악축제에는 시인 이해인 수녀가 ‘통일과 평화의 노래’ 축시 낭송과, 복음성가 가수 김정식 씨의 ‘평화의 노래’, 서울대 무용과 교수이자 승무인간문화재인 이애주 씨와 그 제자들의 모임인 한춤공동체에서 바라춤, 법고춤, 살풀이춤을 선보였다. 9?11 테러사건 이후 종교간의 공존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시점에서 평화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의 염원을 담아낸 이 아름다운 축제를 개최한 현장스님을 찾아 삶의 해법을 들어보았다.
이곳은 참 아름답습니다. 절에 이르는 길목 15리 양켠에 벚나무가 심어져 있어 마치 초롱동굴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봄에는 벚꽃이 흐드러져 정말 볼 만하겠습니다.
(찻물을 끓이다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다들 좋다고 합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천국을 느끼고, 또 불자들은 극락을 느낀다고 해요. 그러고 보면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은 내 마음 안에 있다고 볼 수 있죠. 다만 대상에 따라 그것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천국과 극락은 아상(我想), 아집(我執)에서 벗어난 세계입니다. 그곳은 탐욕과 교만과 어리석음이 소멸된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인생살이가 갈수록 힘들고 고달프다는 걸 느낍니다. 제 자신도 순수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은 ‘도토리 키재기’하는 곳 같습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 둘레에 있으니까 번뇌가 자꾸 일어나죠. 그러나 대상이 문제가 아닙니다. 친구?경전?원수?세상 이 모든 것이 자기 마음 닦아진 만큼 보입니다. 똑같은 소설책이라도 읽는 시기에 따라 다르게 울림이 오는 이치와 같습니다. 성서?자연풍경도 마찬가지죠. 인식의 순수함이 중요합니다. ‘고(苦)’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입니다. 생로병사가 괴로운데 어찌 세상살이가 괴롭지 않겠어요?(웃음) 그러나 순간순간 일어나는 마음을 볼 수 있다면, 나쁜 번뇌(교만?분노?탐욕?무지)를 보게 해주는 상대가 도리어 나의 스승인 셈입니다. 우리가 통찰의 지혜를 키워 나간다고 할 때 말입니다.
성서에서, 노인의 영광은 그 백발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자꾸 욕심이 늘어가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차를 따라 주면서) 불안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믿고 의지할 데가 차츰 없어지기 때문이겠지요. 자식도, 친구도, 산도 못 믿기 때문에 믿을 곳이 돈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나이가 들수록 집착을 더 하게 되는데 그게 노욕입니다. 남자는 재산이 늘면 여자에게 비싼 선물은 잘 주지만, 재산 분배는 안합니다. 재산을 주면 아내조차 잃어 버릴 것 같아서입니다. 즉 아내가 경제적으로 자립을 할까봐 두려운 거죠. 불안, 두려움의 요소를 똑바로 보는 게 중요합니다. 믿음이 소멸되면 물질에 집착하는데, 그러나 그렇게 되면 더 큰 두려움에 빠지고 또 두려움을 증장시킵니다. ‘무상(無常)’이 진리입니다. 내것이라고 움켜쥘 만한 확고부동한 것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은행이 망해 가는 판국인데, 어떻게 물질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웃음)

요즘 종교의 형태를 어떻게 보십니까?
종교는 기업화되고, 기업은 종교화되는 추세입니다. 종교 지도자들과 수호자들은 믿음이 모범이 돼야 합니다. 가끔 그들이 나쁜 모양을 보고 실망해 신앙을 저 버리는 사람들도 있고, 또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점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종교 지도자와 수도자는 우리 사린?배출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 공동의 업(業)이라고 할 수 있죠. 다 우리 탓, 내 탓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지도자를 만나 영적 선익을 얻으려면 먼저 신자들부터 맑고 선한 업을 쌓아 가야 합니다. 해인사 스님 두 분이 천주교 수도원에서 2개월 동안 생활했는데, 성경을 볼 때보다 수사님들 사는 모습에서 신을 보았다고 합니다. 기도와 노동을 통해 집단적으로 순수성을 지켜내는 모습에 감동 받았던 것입니다.


성공회대 정양모 신부는 최근 『평화신문』 기고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타종교인들과 대화할 때 배타주의나 우월주의에 사로잡히지 말고 자성부터 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그리스도교와 불교가 애덕행, 자비행을 함께 실천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염원한다고 했더군요.
1996년 세계종교회의(미국 시카고)때 티벳 불교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종교를 위해 어떻게 봉사할까 하는 것이 화두였지만, 지금은 종교가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까를 모색하는 전환기에 있습니다. 환경?중생?모든 생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힘을 모아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9?11 테러사건과 그 이후, 종교를 밑바탕에 깔고 있는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전쟁은 교리 차이 때문이 아니라, 세계 선교 전략 때문입니다. 지금은 공존의 시대입니다. 불교로 개종하고 싶다는 어느 기독교 신자에게 달라이 라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발 불교로 개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불교의 가르침으로 그대의 종교 전통을 심화 발전시키는 일에 기여하시오”라고 말입니다.

포교나 선교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서울대 출신 출가자인 어느 스님은 전국 선방을 10년간 전전하면서 수행하다가 그만 한계를 느껴 티벳으로 가 ‘톡텐’ 수행자들과 6개월을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 스님 하는 말이, “포교가 어렵다고 하는데 사실 포교처럼 쉬운 것이 없습니다. 포교나 선교, 교화가 어려운 이유는 자기 안에 지혜, 자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전에 가톨릭 신자가 왔을 때 그 스님의 말을 들려주면서 저는 이렇게 덧붙였지요.
“선교해야 할 대상은 한 명도 없습니다. 굳이 찾자면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부터 선교가 안 됐기 때문에 선교가 어려운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선교화는 지혜와 사랑으로 가득찬 하느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도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있을 때 신이 없고 신이 있을 때는 내가 없다’ 지혜가 있다는 것은 교만심을 없앴다는 것인데, 교만심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 온전한 하느님의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라고요.

지난 5월 이곳 대원사에서 세계평화기원 종교음악축제가 열렸을 때 고성 올리베따노 요나 수사님도 그 공동체와 함께 참석하셨던데, 그분과는 언제부터 친교를 나누게 되었는지요?
어느 유태인 랍비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종교간에 얼마만큼 서로가 화해, 협력을 이루고 있는가를 보면 그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제가 이곳 주지로 올 때 대원사 불자들 뿐만 아니라 이웃 종교인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원을 세웠습니다. 요나 수사님은 같은 수도자로서의 동질감을 다른 스님들보다도 더 깊게 느낍니다. 그분에게서 인간적인 순수성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10여년 전 로마의 어느 신학대학교 총장 신부님이 우리나라에 오셨는데, 이 분이 전통 한국 사찰에서 하룻밤 머물고자 하셨습니다. 해인 수녀님이 송광사를 소개했는데, 마침 그 절은 방학이라 손님을 맞이할 스님이 없어 대원사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일행 다섯분이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면서 선체조, 108배 의식을 함께 했는데, 그게 좋은 추억이었나 봅니다. 나중에 총장 신부님이 로마에서 감사 전화까지 주셨습니다.

시인 해인 수녀님과의 우정도 각별하다고 들었습니다.
해인 수녀님은 제가 서울 법련사에서 살 때 처음 만났습니다. 그분은 화순에 살고 있는 한 자매님을 통해 호남지역 불우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계신데, 한번은 ‘자비신행회’라는 모임에서 그분을 초청해 특강을 들었습니다. 특강이 끝나고 그날 밤 육체 질환이 있는 미혼 독신 여성들의 모임인 ‘사랑의 고리’ 회원들과 주무시러 가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해인 수녀님에게서 참 수도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옛 불교 수행자들은 탁발하면서 수행했습니다. 초기 수행자들은 가난한 이들이 도움을 받을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는데, 그게 수도자 삶의 원형이었던 거죠. 지금도 티벳 ‘톡텐’ 수도승들은 가난한 이들보다 더 가난하게 살면서 임종자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물론 보수도 일체 받지 않습니다.

스님께서 ‘자비신행회’를 만들어 외로움과 고통 속의 이웃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결식 노인과 아동에게 도시락을 보내고, 말기암 환자들을 돌보는 활동 등 말입니다.
저는 우리 마음 속에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연민의 마음이 깃들어있다고 봅니다. 이 세상이 한 송이 꽃임을 아는 것을 지혜라 하고, 모든 생명을 한 가족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을 자비라고 합니다. 번뇌의 마음을 다스리고 자비의 마음을 함께 나누고자 ‘자비신행회’가 문을 연 것입니다. 요나 수사님 공동체도 여기에 동참하셨습니다. 새천년 맞이 금식기도를 하셨는데, 이때 모은 금식 성금을 독거노인들을 돕는데 보텐 것입니다.

이 절에선 낙태아들의 영혼을 천도하는 기도를 올린다고 들었습니다.
저 극락전 옆에 아기를 안고 있는 지장보살상이 서 있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불교 전통으로 보자면 지장보살이 아기 안은 모습은 없습니다. 시대적으로 중생 욕구에 따라 새롭게 생겨났는데, 그 이미지를 보면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자상과 흡사합니다. 저는 여름, 겨울 두 차례 낙태아 영혼을 구하기 위한 비원을 세우고 백일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낙태를 경험한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고통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태아를 지우는 것은 곧 고귀한 생명과 자기 양심을 죽이는 행위입니다. 어떤 참회자들은 자기 피를 뽑아서 쓴 경전을 부처님께 바치는 경우가 있는데 참 아름답고 지극한 참회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대원사 입구에 티벳 박물관을 세운 취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15년 전 티벳을 여행하면서 그들의 풍습이 우리의 과거 모습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재산이 아니라고 생각한 티벳인들은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재산을 모으기 위해 악업을 피하고 선업을 쌓기 위해 매일 기도하고 수행하고 선행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성공은 출세로 통합니다. 그러나 티벳인에게 성공은 얼마나 남을 많이 도왔느냐, 얼마나 자만심을 없앴느냐로 가늠됩니다. 돈과 물질 문명이라는 잣대로 볼 때 티벳은 가난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물질 문명을 누리는 나라마다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세 가지가 없습니다. 정신병이나 우울증환자, 노인성치매환자, 사회범죄가 거의 없습니다. 실제로 저는 그들에게서 돈 문제나 대인관계로 근심걱정에 빠져 있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그런 정신이나 그런 문화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우리 경제성장 과정에서 그 소중한 것들을 잃어 버렸습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우리보다는 외국인이 더 잘 보는 수가 있는데, 어느 유럽 대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한국인들은 5천년 역사와 문화를 곧잘 얘기하는데, 내가 보기엔 한국인들은 바로 어제 태어난 사람들처럼 과거 아름다운 전통을 깡그리 잊어 버리고 오직 돈만을 위해 살고 있는 듯 하다. 한국 문화예술은 어느 나라와 비교도 안 될 만한 품격을 갖추고 있는데, 깊은 사유방법과 맑은 삶의 태도에서 나온 것들이다.”
돈에 집착하다 보면 더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기 십상입니다. 티벳인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과거 정신적 유산을 되찾게 해주고 싶어 마련한 장이니 온갖 욕심, 집착을 훌훌 털고 한번 다녀가십시오.(합장)

* 가톨릭 다이제스트 2002년 8월호에 실린 글을 옮겨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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