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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의 시선집중- 법정스님 입적-현장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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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2  mbc radio  손석희의 시선집중 - 라디오파일 다운로드 
 
 
 

3/12(금) '무소유' 법정스님 입적 - 보성 대원사 현장스님 (속가 친척) 

☎ 손석희 / 무소유의 수행자 법정스님이 어제 입적했습니다. 강원도 눈 쌓인 산이 보고 싶다, 또 내가 입던 승복 그대로 입혀서 화장하고 시줏돈 걷어서 거창한 탑 같은 걸 세우지 말라, 늘 맑은 가난을 강조했던 법정스님다운 생전의 유언이었다고 하는데요. 비단 불교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종교를 떠나서 스님이 남기신 글과 또 소담한 인생을 기리는 많은 분들의 슬픔이 참으로 깊습니다. 오늘 보성대원사 주지 현장스님을 전화로 연결하겠습니다. 현장스님께서는 법정스님과 세속에서는 친척지간이기도 했습니다. 여보세요. 

☎ 현장스님 / 보성 대원사 : 네, 안녕하세요. 

☎ 손석희 / 네, 어렵게 전화 연결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법정스님과는 속가에서도 또 불가에서도 인연이 깊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인연이신지 조금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 현장스님 / 스님께서 서울 봉은사 다래헌에 계실 때 제가 찾아뵌 적이 있습니다. 그 인연으로 송광사로 출가하게 됐는데요. 세속적으로는 삼촌뻘이 됩니다. 그리고 이제 불가에 들어와서도 저는 구산 방장스님 앞으로 계를 받았고 법정스님은 사제가 되기 때문에 불가에서도 삼촌뻘이 되고 저는 조카가 되는 이런 관계입니다. 

☎ 손석희 / 법정스님께서는 너무나 잘 아시는 것처럼 모든 분들이. 무소유를 주장해 오신 분입니다. 법정스님의 행장을 간단히 정리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 시간 통해서. 

 

 
 

 

(법정스님,현장스님) 

 



☎ 현장스님 / 네, 네. 1954년도에 통영 미래사에 계시는 효봉 큰 스님의 제자로 입문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해인사에서 이제 불교 공부를 하셨고요. 그리고 1960년대 동국역경원에서 역경위원으로 하면서 한글대장경과 불교성전, 우리말편찬사업을 주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1976년도에 대표저서인 <무소유>를 발간하시고 그 이후에 여러 아름다운 글들을 책으로 많이 엮어내셨습니다. 1994년도에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을 시작하셨고 1997년도에 김영한, 길상화 불자의 대웅각 터를 시주받아서 길상사를 창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 손석희 / 길상사를 창건하셨지만 회주, 그러니까 법회를 주관하는 스님 역할, 이것만 맡으셨을 뿐이지 사실은 길상사에 계시지 않았고요. 

☎ 현장스님 / 그렇죠. 길상사에 하룻밤도 주무시지 않고 밤늦게라도 강원도 거처로 이렇게 가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적하셔가지고, 입적하셔가지고 어젯밤 처음으로 길상사에서 하룻밤을 주무셨습니다. 

☎ 손석희 / 길상사에서 하룻밤도 주무시지 않았다 라는 것이 결국은 무소유가 무엇인가를 정말 크게 상징적으로 나타내주신 그런 것 같은데요. 입적하시기 전에 지난 9일에 가족 분들과 함께 법정스님을 만나 뵈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얘기를 나누셨는지요? 

☎ 현장스님 / 저희가 목포에 모친께서 법정스님이 위중하시다고 하니까 가기 전에 한번 뵈어야 되겠다 해서 제가 모시고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뵙자마자 많이 모친께서 손잡고 우시고 

☎ 손석희 / 사촌누이가 되시는 거죠. 현장스님의 속세에서의 어머님은. 

☎ 현장스님 /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함께 살았던 분들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몇 살에 죽었는지 이런 얘기들 하니까 고개도 많이 끄떡거리시고 어릴 때 기억을 많이 살리셔가지고 ...기상이 많이 살아 있다고 이런 말씀도 하시고 또 모친께서 이제 내가 스님 아파서 마지막으로 보러왔다고 하니까 마지막 아니라고 다시 볼 수 있다고 그래서 웃으면서 어디 가면 볼 수 있느냐고 하니까 불일암으로 오라고. 불일암은 내가 다리 아파서 못 간다고 하니까 그럼 길상사로 오면 볼 수 있다고 이렇게 모친께서는 내세에서나 다시 보자, 이런 말씀을 기대하셨는데 굉장히 생전에 여유 있게 유머러스하게 이렇게 대답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기억력도 어릴 때 기억도 총총하시고 그날따라 기운이 굉장히 좋으셔가지고 앞으로 몇 달은 문제없겠다, 이렇게 했는데 촛불에 마지막 심지가 올라오듯이 그때가 마지막 불꽃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 손석희 / 세속에서 조카셨으니까요. 갑자기 이게 또 궁금해지네요. 세속에서의 그러니까 출가하시기 전에 법정스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어릴 때 뵈어오셨을 텐데. 

☎ 현장스님 / 저도 어릴 때 뵌 것은 아니고 얘기만 들었죠. 그리고 이제 스님께서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 하는것이 왜 담배도 안 피우고 산중 맑은 곳에서 사는 분이 이렇게 폐암에 걸리셨는지 거기에 대해서 많이 의문을 갖습니다. 스님께서 네살 때 아버지께서 폐병으로 돌아가셨어요.

☎ 손석희 / 그렇군요. 

☎ 현장스님 / 그렇기 때문에 아마 출가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 같고요. 그리고 이제 집안 내력으로 폐질환이 좀 유전적인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제 출가하셔서 맑게 살았기 때문에 79세로 장수를 하신 측이고요. 또 79세를 사신 것도 좀 뜻이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부처님 제자로서, 부처님이 80세를 살았는데 부처님보다 더 살면 미안하다, 뭐 이런 얘기들을 하셨거든요. 그리고 이제 상좌를 안 두고 굉장히 늦게 두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제자가 되길 원해서 많이 찾아왔는데 거절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부처님도 ...시봉을 쉰다섯 살 때부터 받았다, 그런 말씀으로 거절하셨어요. 그리고 나서 55세 지나니까 상좌를 받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그런 것도 다 연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 손석희 / 다비식도 하지 마라, 그동안 좌선하던 강원도 오두막 앞에 넙적바위에서 화장해 달라, 이것이 마지막을 지키던 류시화 시인이 전한 법정스님의 유언이었다고 저희가 전해 들었는데요. 그래도 떠나보내는 우리 스님들께서는 굉장히 뭐랄까요. 서운하신 점도 있으시죠? 

☎ 현장스님 / 예, 보통 큰 스님들이 유언하시고 유촉하시는데 보통 제자들이 따르지 않거든요. 그런데 스님은 생전에 책에다도 여러 번 쓰셨고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고 또 그것이 지켜지지 않을까봐서 송광사의 그 소임자들을 불러가지고 그 마지막으로 또 당부를 하셨어요. 

☎ 손석희 / 다짐까지 받아두셨군요. 

☎ 현장스님 / 예. 그래 가지고 마지막에 이렇게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그걸 제가 소개해드릴게요. ‘모든 사람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일체의 번거로운 장례식은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라. 화환과 부의금을 받지 말라. 삼일장 하지 말고 지체 없이 화장하라. 평소에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고 사리도 찾지 말고 탑과 사리탑도 세우지 말라’ 이렇게 당부를 했습니다. 

☎ 손석희 / 법정스님의 마지막 유언을 끝으로 오늘 인터뷰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현장스님 / 네, 감사합니다. 

☎ 손석희 / 보성 대원사 현장스님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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