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공지사항 대원사의 소식을 전합니다.

HOME > 사찰소식 > 공지사항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변택주 2010/01/19 404

대원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변택주 2010/01/19 404
 


법정스님. 법명을 떠올리기만 해도 맑은 기운이 온몸을 감아 돈다. 스님 글을 읽고 문뜩문뜩 스님을 뵙고 싶은 마음은 들었지만, 그저 바람 일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법정스님께서 어느 할머니에게 요정을 시주를 받아 절을 세우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도 그뿐이었는데….


그렇게 길상사가 절이 된 그 이듬해 봄. 아내가 법정스님 법회가 길상사에서 열린다는 기사를 읽고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스님 글을 읽으면서 기쁨을 누리고 스님과 같은 시대를 사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모자람이 없다고 여겼었다. 그뿐이었는데, 아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먼발치서라도 스님을 뵙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여린 나무 새순들이 세월이 만든 두꺼운 껍질을 뚫고 세상에 고개를 내밀어 빛을 발하던 날, 봄 바람결을 따라 곁님 손을 잡고 길상사 나들이를 했다. ‘아, 서울 시내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절집 같지 않게 단청이 되지 않아 봄 햇살에 나뭇결을 고스란히 드러낸 극락전이 정갈하고 살갑게 다가왔다. 부처님 숨결이 감싸드는 고즈넉한 길상사는 한 폭 그림처럼 그렇게 내 안에 들어앉았다.




내 전생이 무슨 복을 지었을까? 그 해 가을, 법정스님 법석 사회를 보게 되는 인연을 맺었다. 그 뒤로 십년 세월을 빠짐없이 스님 숨결을 느끼면서 법음을 듣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21세기를 여는 2000년 새싹이 틀 무렵, 수련회에서 스님께 지혜 지에 빛 광, ‘지광智光’이란 법명을 받았다. 어리석고 아둔함에서 벗어나라고 그런 법명을 지어 주셨으리라. 법명을 받으면 그 법명답게 살아야 한다는데…. 아내는 같은 해 신록이 푸르름을 자랑하는 오월 수련회를 마치고 법명을 받았다. 곁님 법명은 정혜심正慧心


길상사에 첫발을 디딘지 십년 세월이 잠깐 지났다. 무슨 일이든 망설이고 미루기만 내가 ‘바로 지금이지, 그때가 따로 있지 않다.’는 준엄하신 스님 말씀에 따라 삼십년 가까이 피고 마시던 담배와 술을 멀리했다. 그랬더니 술과 담배에 찌들어 죽었던 밤 시간이 살아났다.


식구들과 어우렁더우렁 이야기도 주고받으며 책을 벗 삼는 새 세상이 열렸다. 그 뒤 술은 한 십년 가까이 마시지 않다가 살기가 팍팍해 힘들어 하는 동료나 후배 푸념을 들을 때 위로 겸 한두 잔씩 함께 마시기도 하고 식구들이랑 두런두런 사는 얘기를 나눌 때 가끔 한두 잔씩 곁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담배와는 이제 완전히 남이 되었다. 


스님 은덕으로 열린 새 세상을 새록새록 맛보면서 여기가 극락이지 어디서 극락을 따로 구할 것인가 싶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일은 수계식 때 스님께 들었던‘착하게 살라’는 말씀이다. 간단하고 지극히 평범한 그 말씀, 착하게 사는 일이 말처럼 쉽고 간단치 않다. 오랫동안 몸에 찌든 타성과 이기심이 쉽사리 자리를 ‘착하게’ 내주지 않는 까닭이다.




스님께서는 지금도 비구계를 받으신 하안거 해제 날에는 계를 받고 처음 배운 <초발심자경문>을 다시 펼쳐 보시면서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 새로이 삶을 관조한다고 하신다. 스님이 깨닫고 나신 뒤에도 늘 처음 시작하던 그 자리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시듯이 나 또한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결제結制를 하면 해제解制를 하고, 입재入齋를 하면 반드시 회향回向을 해야 하는 법. 배웠으면 그 배움이 비록 짧고 모자랄지라도 한 단원을 정리하고 마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집에서는 ‘수본진심 제일정진守本眞心 第一精眞’이라는 말이 있다. ‘참 마음’ 순수한 첫 마음자리를 찾는 것이 가장 으뜸가는 공부라는 말이다. 그래서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산에 오른 지 11년 째 되는 봄,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또 두 해째를 맞았건만 아직도 몸이 뻐근해지도록 절절하게 사무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미욱하고 게으른 탓이리라. 이제 또 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한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고 무에 달라질 일이 있을 것인가. 제 마음자리를 찾아 세상이 바로보이면 새달이나 새해를 따질 일 없이 하루하루 새로 떠오르는 해를 맞을 때마다 늘 새롭고 신비로울 것이다.


게으른 수행자에게는 늘 새롭고 신비로운 날이 새로 열려 날마다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게 주는 자연이 고맙고도 고맙다. 기적처럼 주어진 이 신비로운 오늘은 앞으로 얼마나 또 내게 주어질 수 있을까.


소중한 오늘.


오! 늘 좋은 날!이다.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변택주 2010/01/19 404
 


법정스님. 법명을 떠올리기만 해도 맑은 기운이 온몸을 감아 돈다. 스님 글을 읽고 문뜩문뜩 스님을 뵙고 싶은 마음은 들었지만, 그저 바람 일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법정스님께서 어느 할머니에게 요정을 시주를 받아 절을 세우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도 그뿐이었는데….


그렇게 길상사가 절이 된 그 이듬해 봄. 아내가 법정스님 법회가 길상사에서 열린다는 기사를 읽고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스님 글을 읽으면서 기쁨을 누리고 스님과 같은 시대를 사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모자람이 없다고 여겼었다. 그뿐이었는데, 아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먼발치서라도 스님을 뵙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여린 나무 새순들이 세월이 만든 두꺼운 껍질을 뚫고 세상에 고개를 내밀어 빛을 발하던 날, 봄 바람결을 따라 곁님 손을 잡고 길상사 나들이를 했다. ‘아, 서울 시내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절집 같지 않게 단청이 되지 않아 봄 햇살에 나뭇결을 고스란히 드러낸 극락전이 정갈하고 살갑게 다가왔다. 부처님 숨결이 감싸드는 고즈넉한 길상사는 한 폭 그림처럼 그렇게 내 안에 들어앉았다.




내 전생이 무슨 복을 지었을까? 그 해 가을, 법정스님 법석 사회를 보게 되는 인연을 맺었다. 그 뒤로 십년 세월을 빠짐없이 스님 숨결을 느끼면서 법음을 듣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21세기를 여는 2000년 새싹이 틀 무렵, 수련회에서 스님께 지혜 지에 빛 광, ‘지광智光’이란 법명을 받았다. 어리석고 아둔함에서 벗어나라고 그런 법명을 지어 주셨으리라. 법명을 받으면 그 법명답게 살아야 한다는데…. 아내는 같은 해 신록이 푸르름을 자랑하는 오월 수련회를 마치고 법명을 받았다. 곁님 법명은 정혜심正慧心


길상사에 첫발을 디딘지 십년 세월이 잠깐 지났다. 무슨 일이든 망설이고 미루기만 내가 ‘바로 지금이지, 그때가 따로 있지 않다.’는 준엄하신 스님 말씀에 따라 삼십년 가까이 피고 마시던 담배와 술을 멀리했다. 그랬더니 술과 담배에 찌들어 죽었던 밤 시간이 살아났다.


식구들과 어우렁더우렁 이야기도 주고받으며 책을 벗 삼는 새 세상이 열렸다. 그 뒤 술은 한 십년 가까이 마시지 않다가 살기가 팍팍해 힘들어 하는 동료나 후배 푸념을 들을 때 위로 겸 한두 잔씩 함께 마시기도 하고 식구들이랑 두런두런 사는 얘기를 나눌 때 가끔 한두 잔씩 곁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담배와는 이제 완전히 남이 되었다. 


스님 은덕으로 열린 새 세상을 새록새록 맛보면서 여기가 극락이지 어디서 극락을 따로 구할 것인가 싶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일은 수계식 때 스님께 들었던‘착하게 살라’는 말씀이다. 간단하고 지극히 평범한 그 말씀, 착하게 사는 일이 말처럼 쉽고 간단치 않다. 오랫동안 몸에 찌든 타성과 이기심이 쉽사리 자리를 ‘착하게’ 내주지 않는 까닭이다.




스님께서는 지금도 비구계를 받으신 하안거 해제 날에는 계를 받고 처음 배운 <초발심자경문>을 다시 펼쳐 보시면서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 새로이 삶을 관조한다고 하신다. 스님이 깨닫고 나신 뒤에도 늘 처음 시작하던 그 자리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시듯이 나 또한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결제結制를 하면 해제解制를 하고, 입재入齋를 하면 반드시 회향回向을 해야 하는 법. 배웠으면 그 배움이 비록 짧고 모자랄지라도 한 단원을 정리하고 마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집에서는 ‘수본진심 제일정진守本眞心 第一精眞’이라는 말이 있다. ‘참 마음’ 순수한 첫 마음자리를 찾는 것이 가장 으뜸가는 공부라는 말이다. 그래서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산에 오른 지 11년 째 되는 봄,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또 두 해째를 맞았건만 아직도 몸이 뻐근해지도록 절절하게 사무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미욱하고 게으른 탓이리라. 이제 또 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한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고 무에 달라질 일이 있을 것인가. 제 마음자리를 찾아 세상이 바로보이면 새달이나 새해를 따질 일 없이 하루하루 새로 떠오르는 해를 맞을 때마다 늘 새롭고 신비로울 것이다.


게으른 수행자에게는 늘 새롭고 신비로운 날이 새로 열려 날마다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게 주는 자연이 고맙고도 고맙다. 기적처럼 주어진 이 신비로운 오늘은 앞으로 얼마나 또 내게 주어질 수 있을까.


소중한 오늘.


오! 늘 좋은 날!이다.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변택주 2010/01/19 404
 


법정스님. 법명을 떠올리기만 해도 맑은 기운이 온몸을 감아 돈다. 스님 글을 읽고 문뜩문뜩 스님을 뵙고 싶은 마음은 들었지만, 그저 바람 일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법정스님께서 어느 할머니에게 요정을 시주를 받아 절을 세우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도 그뿐이었는데….


그렇게 길상사가 절이 된 그 이듬해 봄. 아내가 법정스님 법회가 길상사에서 열린다는 기사를 읽고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스님 글을 읽으면서 기쁨을 누리고 스님과 같은 시대를 사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모자람이 없다고 여겼었다. 그뿐이었는데, 아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먼발치서라도 스님을 뵙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여린 나무 새순들이 세월이 만든 두꺼운 껍질을 뚫고 세상에 고개를 내밀어 빛을 발하던 날, 봄 바람결을 따라 곁님 손을 잡고 길상사 나들이를 했다. ‘아, 서울 시내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절집 같지 않게 단청이 되지 않아 봄 햇살에 나뭇결을 고스란히 드러낸 극락전이 정갈하고 살갑게 다가왔다. 부처님 숨결이 감싸드는 고즈넉한 길상사는 한 폭 그림처럼 그렇게 내 안에 들어앉았다.




내 전생이 무슨 복을 지었을까? 그 해 가을, 법정스님 법석 사회를 보게 되는 인연을 맺었다. 그 뒤로 십년 세월을 빠짐없이 스님 숨결을 느끼면서 법음을 듣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21세기를 여는 2000년 새싹이 틀 무렵, 수련회에서 스님께 지혜 지에 빛 광, ‘지광智光’이란 법명을 받았다. 어리석고 아둔함에서 벗어나라고 그런 법명을 지어 주셨으리라. 법명을 받으면 그 법명답게 살아야 한다는데…. 아내는 같은 해 신록이 푸르름을 자랑하는 오월 수련회를 마치고 법명을 받았다. 곁님 법명은 정혜심正慧心


길상사에 첫발을 디딘지 십년 세월이 잠깐 지났다. 무슨 일이든 망설이고 미루기만 내가 ‘바로 지금이지, 그때가 따로 있지 않다.’는 준엄하신 스님 말씀에 따라 삼십년 가까이 피고 마시던 담배와 술을 멀리했다. 그랬더니 술과 담배에 찌들어 죽었던 밤 시간이 살아났다.


식구들과 어우렁더우렁 이야기도 주고받으며 책을 벗 삼는 새 세상이 열렸다. 그 뒤 술은 한 십년 가까이 마시지 않다가 살기가 팍팍해 힘들어 하는 동료나 후배 푸념을 들을 때 위로 겸 한두 잔씩 함께 마시기도 하고 식구들이랑 두런두런 사는 얘기를 나눌 때 가끔 한두 잔씩 곁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담배와는 이제 완전히 남이 되었다. 


스님 은덕으로 열린 새 세상을 새록새록 맛보면서 여기가 극락이지 어디서 극락을 따로 구할 것인가 싶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일은 수계식 때 스님께 들었던‘착하게 살라’는 말씀이다. 간단하고 지극히 평범한 그 말씀, 착하게 사는 일이 말처럼 쉽고 간단치 않다. 오랫동안 몸에 찌든 타성과 이기심이 쉽사리 자리를 ‘착하게’ 내주지 않는 까닭이다.




스님께서는 지금도 비구계를 받으신 하안거 해제 날에는 계를 받고 처음 배운 <초발심자경문>을 다시 펼쳐 보시면서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 새로이 삶을 관조한다고 하신다. 스님이 깨닫고 나신 뒤에도 늘 처음 시작하던 그 자리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시듯이 나 또한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결제結制를 하면 해제解制를 하고, 입재入齋를 하면 반드시 회향回向을 해야 하는 법. 배웠으면 그 배움이 비록 짧고 모자랄지라도 한 단원을 정리하고 마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집에서는 ‘수본진심 제일정진守本眞心 第一精眞’이라는 말이 있다. ‘참 마음’ 순수한 첫 마음자리를 찾는 것이 가장 으뜸가는 공부라는 말이다. 그래서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산에 오른 지 11년 째 되는 봄,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또 두 해째를 맞았건만 아직도 몸이 뻐근해지도록 절절하게 사무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미욱하고 게으른 탓이리라. 이제 또 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한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고 무에 달라질 일이 있을 것인가. 제 마음자리를 찾아 세상이 바로보이면 새달이나 새해를 따질 일 없이 하루하루 새로 떠오르는 해를 맞을 때마다 늘 새롭고 신비로울 것이다.


게으른 수행자에게는 늘 새롭고 신비로운 날이 새로 열려 날마다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게 주는 자연이 고맙고도 고맙다. 기적처럼 주어진 이 신비로운 오늘은 앞으로 얼마나 또 내게 주어질 수 있을까.


소중한 오늘.


오! 늘 좋은 날!이다.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변택주 2010/01/19 404
 


법정스님. 법명을 떠올리기만 해도 맑은 기운이 온몸을 감아 돈다. 스님 글을 읽고 문뜩문뜩 스님을 뵙고 싶은 마음은 들었지만, 그저 바람 일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법정스님께서 어느 할머니에게 요정을 시주를 받아 절을 세우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도 그뿐이었는데….


그렇게 길상사가 절이 된 그 이듬해 봄. 아내가 법정스님 법회가 길상사에서 열린다는 기사를 읽고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스님 글을 읽으면서 기쁨을 누리고 스님과 같은 시대를 사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모자람이 없다고 여겼었다. 그뿐이었는데, 아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먼발치서라도 스님을 뵙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여린 나무 새순들이 세월이 만든 두꺼운 껍질을 뚫고 세상에 고개를 내밀어 빛을 발하던 날, 봄 바람결을 따라 곁님 손을 잡고 길상사 나들이를 했다. ‘아, 서울 시내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절집 같지 않게 단청이 되지 않아 봄 햇살에 나뭇결을 고스란히 드러낸 극락전이 정갈하고 살갑게 다가왔다. 부처님 숨결이 감싸드는 고즈넉한 길상사는 한 폭 그림처럼 그렇게 내 안에 들어앉았다.




내 전생이 무슨 복을 지었을까? 그 해 가을, 법정스님 법석 사회를 보게 되는 인연을 맺었다. 그 뒤로 십년 세월을 빠짐없이 스님 숨결을 느끼면서 법음을 듣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21세기를 여는 2000년 새싹이 틀 무렵, 수련회에서 스님께 지혜 지에 빛 광, ‘지광智光’이란 법명을 받았다. 어리석고 아둔함에서 벗어나라고 그런 법명을 지어 주셨으리라. 법명을 받으면 그 법명답게 살아야 한다는데…. 아내는 같은 해 신록이 푸르름을 자랑하는 오월 수련회를 마치고 법명을 받았다. 곁님 법명은 정혜심正慧心


길상사에 첫발을 디딘지 십년 세월이 잠깐 지났다. 무슨 일이든 망설이고 미루기만 내가 ‘바로 지금이지, 그때가 따로 있지 않다.’는 준엄하신 스님 말씀에 따라 삼십년 가까이 피고 마시던 담배와 술을 멀리했다. 그랬더니 술과 담배에 찌들어 죽었던 밤 시간이 살아났다.


식구들과 어우렁더우렁 이야기도 주고받으며 책을 벗 삼는 새 세상이 열렸다. 그 뒤 술은 한 십년 가까이 마시지 않다가 살기가 팍팍해 힘들어 하는 동료나 후배 푸념을 들을 때 위로 겸 한두 잔씩 함께 마시기도 하고 식구들이랑 두런두런 사는 얘기를 나눌 때 가끔 한두 잔씩 곁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담배와는 이제 완전히 남이 되었다. 


스님 은덕으로 열린 새 세상을 새록새록 맛보면서 여기가 극락이지 어디서 극락을 따로 구할 것인가 싶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일은 수계식 때 스님께 들었던‘착하게 살라’는 말씀이다. 간단하고 지극히 평범한 그 말씀, 착하게 사는 일이 말처럼 쉽고 간단치 않다. 오랫동안 몸에 찌든 타성과 이기심이 쉽사리 자리를 ‘착하게’ 내주지 않는 까닭이다.




스님께서는 지금도 비구계를 받으신 하안거 해제 날에는 계를 받고 처음 배운 <초발심자경문>을 다시 펼쳐 보시면서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 새로이 삶을 관조한다고 하신다. 스님이 깨닫고 나신 뒤에도 늘 처음 시작하던 그 자리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시듯이 나 또한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결제結制를 하면 해제解制를 하고, 입재入齋를 하면 반드시 회향回向을 해야 하는 법. 배웠으면 그 배움이 비록 짧고 모자랄지라도 한 단원을 정리하고 마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집에서는 ‘수본진심 제일정진守本眞心 第一精眞’이라는 말이 있다. ‘참 마음’ 순수한 첫 마음자리를 찾는 것이 가장 으뜸가는 공부라는 말이다. 그래서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산에 오른 지 11년 째 되는 봄,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또 두 해째를 맞았건만 아직도 몸이 뻐근해지도록 절절하게 사무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미욱하고 게으른 탓이리라. 이제 또 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한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고 무에 달라질 일이 있을 것인가. 제 마음자리를 찾아 세상이 바로보이면 새달이나 새해를 따질 일 없이 하루하루 새로 떠오르는 해를 맞을 때마다 늘 새롭고 신비로울 것이다.


게으른 수행자에게는 늘 새롭고 신비로운 날이 새로 열려 날마다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게 주는 자연이 고맙고도 고맙다. 기적처럼 주어진 이 신비로운 오늘은 앞으로 얼마나 또 내게 주어질 수 있을까.


소중한 오늘.


오! 늘 좋은 날!이다.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변택주 2010/01/19 404
 


법정스님. 법명을 떠올리기만 해도 맑은 기운이 온몸을 감아 돈다. 스님 글을 읽고 문뜩문뜩 스님을 뵙고 싶은 마음은 들었지만, 그저 바람 일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법정스님께서 어느 할머니에게 요정을 시주를 받아 절을 세우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도 그뿐이었는데….


그렇게 길상사가 절이 된 그 이듬해 봄. 아내가 법정스님 법회가 길상사에서 열린다는 기사를 읽고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스님 글을 읽으면서 기쁨을 누리고 스님과 같은 시대를 사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모자람이 없다고 여겼었다. 그뿐이었는데, 아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먼발치서라도 스님을 뵙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여린 나무 새순들이 세월이 만든 두꺼운 껍질을 뚫고 세상에 고개를 내밀어 빛을 발하던 날, 봄 바람결을 따라 곁님 손을 잡고 길상사 나들이를 했다. ‘아, 서울 시내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절집 같지 않게 단청이 되지 않아 봄 햇살에 나뭇결을 고스란히 드러낸 극락전이 정갈하고 살갑게 다가왔다. 부처님 숨결이 감싸드는 고즈넉한 길상사는 한 폭 그림처럼 그렇게 내 안에 들어앉았다.




내 전생이 무슨 복을 지었을까? 그 해 가을, 법정스님 법석 사회를 보게 되는 인연을 맺었다. 그 뒤로 십년 세월을 빠짐없이 스님 숨결을 느끼면서 법음을 듣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21세기를 여는 2000년 새싹이 틀 무렵, 수련회에서 스님께 지혜 지에 빛 광, ‘지광智光’이란 법명을 받았다. 어리석고 아둔함에서 벗어나라고 그런 법명을 지어 주셨으리라. 법명을 받으면 그 법명답게 살아야 한다는데…. 아내는 같은 해 신록이 푸르름을 자랑하는 오월 수련회를 마치고 법명을 받았다. 곁님 법명은 정혜심正慧心


길상사에 첫발을 디딘지 십년 세월이 잠깐 지났다. 무슨 일이든 망설이고 미루기만 내가 ‘바로 지금이지, 그때가 따로 있지 않다.’는 준엄하신 스님 말씀에 따라 삼십년 가까이 피고 마시던 담배와 술을 멀리했다. 그랬더니 술과 담배에 찌들어 죽었던 밤 시간이 살아났다.


식구들과 어우렁더우렁 이야기도 주고받으며 책을 벗 삼는 새 세상이 열렸다. 그 뒤 술은 한 십년 가까이 마시지 않다가 살기가 팍팍해 힘들어 하는 동료나 후배 푸념을 들을 때 위로 겸 한두 잔씩 함께 마시기도 하고 식구들이랑 두런두런 사는 얘기를 나눌 때 가끔 한두 잔씩 곁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담배와는 이제 완전히 남이 되었다. 


스님 은덕으로 열린 새 세상을 새록새록 맛보면서 여기가 극락이지 어디서 극락을 따로 구할 것인가 싶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일은 수계식 때 스님께 들었던‘착하게 살라’는 말씀이다. 간단하고 지극히 평범한 그 말씀, 착하게 사는 일이 말처럼 쉽고 간단치 않다. 오랫동안 몸에 찌든 타성과 이기심이 쉽사리 자리를 ‘착하게’ 내주지 않는 까닭이다.




스님께서는 지금도 비구계를 받으신 하안거 해제 날에는 계를 받고 처음 배운 <초발심자경문>을 다시 펼쳐 보시면서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 새로이 삶을 관조한다고 하신다. 스님이 깨닫고 나신 뒤에도 늘 처음 시작하던 그 자리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시듯이 나 또한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결제結制를 하면 해제解制를 하고, 입재入齋를 하면 반드시 회향回向을 해야 하는 법. 배웠으면 그 배움이 비록 짧고 모자랄지라도 한 단원을 정리하고 마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집에서는 ‘수본진심 제일정진守本眞心 第一精眞’이라는 말이 있다. ‘참 마음’ 순수한 첫 마음자리를 찾는 것이 가장 으뜸가는 공부라는 말이다. 그래서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산에 오른 지 11년 째 되는 봄,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또 두 해째를 맞았건만 아직도 몸이 뻐근해지도록 절절하게 사무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미욱하고 게으른 탓이리라. 이제 또 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한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고 무에 달라질 일이 있을 것인가. 제 마음자리를 찾아 세상이 바로보이면 새달이나 새해를 따질 일 없이 하루하루 새로 떠오르는 해를 맞을 때마다 늘 새롭고 신비로울 것이다.


게으른 수행자에게는 늘 새롭고 신비로운 날이 새로 열려 날마다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게 주는 자연이 고맙고도 고맙다. 기적처럼 주어진 이 신비로운 오늘은 앞으로 얼마나 또 내게 주어질 수 있을까.


소중한 오늘.


오! 늘 좋은 날!이다.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변택주 2010/01/19 404
 


법정스님. 법명을 떠올리기만 해도 맑은 기운이 온몸을 감아 돈다. 스님 글을 읽고 문뜩문뜩 스님을 뵙고 싶은 마음은 들었지만, 그저 바람 일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법정스님께서 어느 할머니에게 요정을 시주를 받아 절을 세우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도 그뿐이었는데….


그렇게 길상사가 절이 된 그 이듬해 봄. 아내가 법정스님 법회가 길상사에서 열린다는 기사를 읽고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스님 글을 읽으면서 기쁨을 누리고 스님과 같은 시대를 사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모자람이 없다고 여겼었다. 그뿐이었는데, 아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먼발치서라도 스님을 뵙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여린 나무 새순들이 세월이 만든 두꺼운 껍질을 뚫고 세상에 고개를 내밀어 빛을 발하던 날, 봄 바람결을 따라 곁님 손을 잡고 길상사 나들이를 했다. ‘아, 서울 시내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절집 같지 않게 단청이 되지 않아 봄 햇살에 나뭇결을 고스란히 드러낸 극락전이 정갈하고 살갑게 다가왔다. 부처님 숨결이 감싸드는 고즈넉한 길상사는 한 폭 그림처럼 그렇게 내 안에 들어앉았다.




내 전생이 무슨 복을 지었을까? 그 해 가을, 법정스님 법석 사회를 보게 되는 인연을 맺었다. 그 뒤로 십년 세월을 빠짐없이 스님 숨결을 느끼면서 법음을 듣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21세기를 여는 2000년 새싹이 틀 무렵, 수련회에서 스님께 지혜 지에 빛 광, ‘지광智光’이란 법명을 받았다. 어리석고 아둔함에서 벗어나라고 그런 법명을 지어 주셨으리라. 법명을 받으면 그 법명답게 살아야 한다는데…. 아내는 같은 해 신록이 푸르름을 자랑하는 오월 수련회를 마치고 법명을 받았다. 곁님 법명은 정혜심正慧心


길상사에 첫발을 디딘지 십년 세월이 잠깐 지났다. 무슨 일이든 망설이고 미루기만 내가 ‘바로 지금이지, 그때가 따로 있지 않다.’는 준엄하신 스님 말씀에 따라 삼십년 가까이 피고 마시던 담배와 술을 멀리했다. 그랬더니 술과 담배에 찌들어 죽었던 밤 시간이 살아났다.


식구들과 어우렁더우렁 이야기도 주고받으며 책을 벗 삼는 새 세상이 열렸다. 그 뒤 술은 한 십년 가까이 마시지 않다가 살기가 팍팍해 힘들어 하는 동료나 후배 푸념을 들을 때 위로 겸 한두 잔씩 함께 마시기도 하고 식구들이랑 두런두런 사는 얘기를 나눌 때 가끔 한두 잔씩 곁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담배와는 이제 완전히 남이 되었다. 


스님 은덕으로 열린 새 세상을 새록새록 맛보면서 여기가 극락이지 어디서 극락을 따로 구할 것인가 싶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일은 수계식 때 스님께 들었던‘착하게 살라’는 말씀이다. 간단하고 지극히 평범한 그 말씀, 착하게 사는 일이 말처럼 쉽고 간단치 않다. 오랫동안 몸에 찌든 타성과 이기심이 쉽사리 자리를 ‘착하게’ 내주지 않는 까닭이다.




스님께서는 지금도 비구계를 받으신 하안거 해제 날에는 계를 받고 처음 배운 <초발심자경문>을 다시 펼쳐 보시면서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 새로이 삶을 관조한다고 하신다. 스님이 깨닫고 나신 뒤에도 늘 처음 시작하던 그 자리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시듯이 나 또한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결제結制를 하면 해제解制를 하고, 입재入齋를 하면 반드시 회향回向을 해야 하는 법. 배웠으면 그 배움이 비록 짧고 모자랄지라도 한 단원을 정리하고 마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집에서는 ‘수본진심 제일정진守本眞心 第一精眞’이라는 말이 있다. ‘참 마음’ 순수한 첫 마음자리를 찾는 것이 가장 으뜸가는 공부라는 말이다. 그래서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산에 오른 지 11년 째 되는 봄,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또 두 해째를 맞았건만 아직도 몸이 뻐근해지도록 절절하게 사무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미욱하고 게으른 탓이리라. 이제 또 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한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고 무에 달라질 일이 있을 것인가. 제 마음자리를 찾아 세상이 바로보이면 새달이나 새해를 따질 일 없이 하루하루 새로 떠오르는 해를 맞을 때마다 늘 새롭고 신비로울 것이다.


게으른 수행자에게는 늘 새롭고 신비로운 날이 새로 열려 날마다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게 주는 자연이 고맙고도 고맙다. 기적처럼 주어진 이 신비로운 오늘은 앞으로 얼마나 또 내게 주어질 수 있을까.


소중한 오늘.


오! 늘 좋은 날!이다.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변택주 2010/01/19 404
 


법정스님. 법명을 떠올리기만 해도 맑은 기운이 온몸을 감아 돈다. 스님 글을 읽고 문뜩문뜩 스님을 뵙고 싶은 마음은 들었지만, 그저 바람 일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법정스님께서 어느 할머니에게 요정을 시주를 받아 절을 세우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도 그뿐이었는데….


그렇게 길상사가 절이 된 그 이듬해 봄. 아내가 법정스님 법회가 길상사에서 열린다는 기사를 읽고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스님 글을 읽으면서 기쁨을 누리고 스님과 같은 시대를 사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모자람이 없다고 여겼었다. 그뿐이었는데, 아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먼발치서라도 스님을 뵙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여린 나무 새순들이 세월이 만든 두꺼운 껍질을 뚫고 세상에 고개를 내밀어 빛을 발하던 날, 봄 바람결을 따라 곁님 손을 잡고 길상사 나들이를 했다. ‘아, 서울 시내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절집 같지 않게 단청이 되지 않아 봄 햇살에 나뭇결을 고스란히 드러낸 극락전이 정갈하고 살갑게 다가왔다. 부처님 숨결이 감싸드는 고즈넉한 길상사는 한 폭 그림처럼 그렇게 내 안에 들어앉았다.




내 전생이 무슨 복을 지었을까? 그 해 가을, 법정스님 법석 사회를 보게 되는 인연을 맺었다. 그 뒤로 십년 세월을 빠짐없이 스님 숨결을 느끼면서 법음을 듣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21세기를 여는 2000년 새싹이 틀 무렵, 수련회에서 스님께 지혜 지에 빛 광, ‘지광智光’이란 법명을 받았다. 어리석고 아둔함에서 벗어나라고 그런 법명을 지어 주셨으리라. 법명을 받으면 그 법명답게 살아야 한다는데…. 아내는 같은 해 신록이 푸르름을 자랑하는 오월 수련회를 마치고 법명을 받았다. 곁님 법명은 정혜심正慧心


길상사에 첫발을 디딘지 십년 세월이 잠깐 지났다. 무슨 일이든 망설이고 미루기만 내가 ‘바로 지금이지, 그때가 따로 있지 않다.’는 준엄하신 스님 말씀에 따라 삼십년 가까이 피고 마시던 담배와 술을 멀리했다. 그랬더니 술과 담배에 찌들어 죽었던 밤 시간이 살아났다.


식구들과 어우렁더우렁 이야기도 주고받으며 책을 벗 삼는 새 세상이 열렸다. 그 뒤 술은 한 십년 가까이 마시지 않다가 살기가 팍팍해 힘들어 하는 동료나 후배 푸념을 들을 때 위로 겸 한두 잔씩 함께 마시기도 하고 식구들이랑 두런두런 사는 얘기를 나눌 때 가끔 한두 잔씩 곁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담배와는 이제 완전히 남이 되었다. 


스님 은덕으로 열린 새 세상을 새록새록 맛보면서 여기가 극락이지 어디서 극락을 따로 구할 것인가 싶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일은 수계식 때 스님께 들었던‘착하게 살라’는 말씀이다. 간단하고 지극히 평범한 그 말씀, 착하게 사는 일이 말처럼 쉽고 간단치 않다. 오랫동안 몸에 찌든 타성과 이기심이 쉽사리 자리를 ‘착하게’ 내주지 않는 까닭이다.




스님께서는 지금도 비구계를 받으신 하안거 해제 날에는 계를 받고 처음 배운 <초발심자경문>을 다시 펼쳐 보시면서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 새로이 삶을 관조한다고 하신다. 스님이 깨닫고 나신 뒤에도 늘 처음 시작하던 그 자리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시듯이 나 또한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결제結制를 하면 해제解制를 하고, 입재入齋를 하면 반드시 회향回向을 해야 하는 법. 배웠으면 그 배움이 비록 짧고 모자랄지라도 한 단원을 정리하고 마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집에서는 ‘수본진심 제일정진守本眞心 第一精眞’이라는 말이 있다. ‘참 마음’ 순수한 첫 마음자리를 찾는 것이 가장 으뜸가는 공부라는 말이다. 그래서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산에 오른 지 11년 째 되는 봄,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또 두 해째를 맞았건만 아직도 몸이 뻐근해지도록 절절하게 사무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미욱하고 게으른 탓이리라. 이제 또 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한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고 무에 달라질 일이 있을 것인가. 제 마음자리를 찾아 세상이 바로보이면 새달이나 새해를 따질 일 없이 하루하루 새로 떠오르는 해를 맞을 때마다 늘 새롭고 신비로울 것이다.


게으른 수행자에게는 늘 새롭고 신비로운 날이 새로 열려 날마다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게 주는 자연이 고맙고도 고맙다. 기적처럼 주어진 이 신비로운 오늘은 앞으로 얼마나 또 내게 주어질 수 있을까.


소중한 오늘.


오! 늘 좋은 날!이다.









 

이 게시물에 덧글쓰기
스팸방지 숫자 그림
* 그림의 숫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