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기사

 

관련기사 언론보도 되었던 대원사 관련 기사입니다.

HOME > 사찰소식 > 관련기사

김교각을 아십니까? <광주드림>

대원사홈페이지이메일
‘김교각’을 아십니까?
보성 대원사, 광주에 ‘지장왕사’ 개설  
현장스님 “사회적 약자 껴안는 뜻 이을 것”
정상철 dreams@gjdream.com
기사 게재일 : 2010-02-23 07:00:00
▲ 최근 문을 연 `지장왕사’. 지장보살의 뜻을 받드는 문화적 공간이다.

 이 나라에서는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그는 열반에 든 지 1200년이 지나도록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다. 김교각의 힘으로 이루어진 구화산 지장도량은 중국 최고의 불교 성지 중 하나다. 그는 신라 사람이었으며 신분은 왕자였다. 법명은 지장, 그가 바로 ‘지장보살’이다.

 김교각의 이름이 이 나라에 알려진 것은 지난 1994년이다. 그는 열반에 앞서 “1200년 후에 본국으로 돌아가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밝혔다. 그 오래된 유언이 사후 1200년 후인 1994년에 실현된 것인데, 국내에서 처음 김지장 유물 특별 유물전이 열렸다. 그 때 중국에서 건너온 김지장 육신보살상은 경주 불국사와 보성 대원사로 모셔졌다.

 대원사가 광주에 지장도량을 열었다. 김교각의 철학과 사상을 현존하는 가치로 전환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그의 생애를 알리기 위해 김지장 기념관과 교육관도 함께 만들었다. 김교각과 관련한 가장 많은 유물들이 그곳에 있다.

 대부분 중국 구화산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대원사 현장스님은 20년 동안 중국 현지를 드나들며 지장과 관련된 유물을 모았다. 지장왕사 소장유물은 구화산에서 직접 보내온 김지장 육신본존상을 비롯해 고배경대(김지장 발자국)가 있다. 그가 국수로 만들어 즐겨 먹었다는 백토, 신라 삽살개, 사경유물 등 300여 점이다.

 지금 이 시대에 왜 김교각일까? 대원사 현장스님은 “지장보살의 철학은 아름답다. 그는 티끌 만한 공적이라도 있으면 모두 구제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중생을 모두 구제한 다음에 비로소 개인의 깨달음을 추구했다. 그의 철학은 사회적 약자를 마지막까지 보듬어내는 정신이다. 약자를 부처로 섬기는 그의 마음은 지금처럼 혼탁한 시대에 구원의 구체적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광주에 문을 연 ‘지장왕사’는 단지 종교적 공간만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모두를 품어내는 문화의 공간이다. 교육관에서는 불교입문 교육과 김지장 사불·사경 등 김지장의 정신을 지도한다. 사찰요리나 태극권, 바라범패 등 문화강좌도 함께 운영한다.

 김지장 기념관은 앞으로 종교시설이 아닌 박물관으로 등록된다. 지장왕사가 깃든 건물도 ‘구화산빌리지’로 명명하고, 앞으로 문화가 깃든 공간으로 꾸준히 변화시켜 나갈 계획이다. 건물의 1층에는 사찰요리 전문점을 열고, 2층과 3층은 아시아문화재단 다문화사업장으로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현재 공간이 확보된 4층과 5층은 김지장 기념관과 교육관, 공연장 등으로 활용된다.

 특히 지장왕사는 다문화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지장의 철학이 모두를 함께 아우르는 정신 속에 앉아있기 때문이다. 현장스님은 “다름을 인정하고, 같음을 찾으면 누구나 하나의 문화적 틀로 엮일 수 있다. 광주에도 다문화가정이 무척 많다. 그들은 이미 우리와 함께 같은 문화의 틀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 사람들과 함께 김지장 보살의 뜻을 살아있는 현재적 증언들로 바꿔나가겠다”고 말했다. 문의 062-529-9909

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script type=text/javascript>//</script>
이 게시물에 덧글쓰기
스팸방지 숫자 그림
* 그림의 숫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