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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km 왕벚나무 길, 벚꽃 필 때 아니어도 좋네-'아름다운 길' 보성 대원사 왕벚나무 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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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km 왕벚나무 길, 벚꽃 필 때 아니어도 좋네 - 오마이뉴스 김현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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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사 왕벚나무길(2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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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사 왕벚나무길 옆의 숲(2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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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이나 가을이면 이런저런 매체들을 통해 여행하기 좋은 곳이랄지 단풍이 아름다운 곳 등으로 선정된 목록을 접하곤 한다. 여유 있게 여행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고, 20년 넘게 현관만 나서면 많은 풀꽃과 나무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에 살다보니 꽃이나 단풍을 찾아 떠날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가을부터 자꾸 서성거리고 있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름다운 숲이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어서다. 숲이 좋아, 나무들과의 만남이 좋아 북한산으로 몇 년째 틈나는 대로 스며들면서도 <오마이뉴스>로부터 아름다운 숲 관련 기획기사 참여 제의를 받을 때까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산림청과 (사)생명의 숲 국민운동본부는 2000년부터 해마다 '후손들에게 물려줄 가치와, 가꾸고 지키는 아름다움이 깃든 숲'들을 선정, 수상해 오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2012~2013년 2년에 걸쳐 이 수상지들에 대한 탐방 기사를 기획했고, 난 9꼭지의 기사를 썼다. 아마도 <오마이뉴스> 기획이 아니었다면,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전혀 몰랐을지도 모르겠다.

목록에서 대원사 왕벚나무길(제5회(2004년) 거리숲 장려상)을 보는 순간 반가웠다. 몇 년 전 모 회사와 초등학교 선생님들 90% 이상이 이용하는 프로그램의 DB작업을 하면서 인상 깊게 만났던 대원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나서기엔(기획기사 기본 콘셉트가 대중교통을 이용한 탐방이었다) 너무 멀고, 그리고 막연했다. 

태아령 천도 사찰, 대원사 

그러다 지난 12일 대원사에 가게 됐다. 전남 보성 터미널에서 오전 9시 10분에 출발하는 사평행 군내 버스를 탔다. 마침 보성 장날(2, 7일)이라 버스는 출발하기 전에 꽉 찼는데, 그나마 젊은 사람은 기사와 나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대책 없이 엉켜드는 버스와 사람들을 헤치고, 보성역 등 서너 개의 정류소에서 사람들을 더 태운 후 시골 마을과 논과 야트막한 산 사이로 난 길을 달리고 달렸다. 그리고 그리 오래지 않아 나 혼자 달랑 태우고 드라이브를 하기에 딱 좋은 길을 한참 더 달린 후 대원사 정류소에 나를 내려놓고 떠났다.

버스가 떠난 후 버스가 정류소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흰색의 커다란 탑(대원사 수미광명탑) 가까이 가봤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들이 걸려 있어 잠시 묵념을 했다. 아직 수습되지 못했다는 시신들이 어서 수습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대원사를 감싸 안은 산은 천봉산이다. 대원사는 백제 때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 고려 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원오국사 등에 의해 크게 발전하거나, 정유재란이나 여순 반란 때 석조물 몇 개만 남기고 거의 모든 전각들이 불타버리는 아픔을 겪었다. 이런 절이 거듭나게 된 것은 1990년대 지금의 회주인, 당시 주지 스님이었던 현장 스님에 의해서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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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봉산 대원사. 멀리 보이는 전각이 주불전인 극락전이다.(2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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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봉산 대원사 극락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7호)(2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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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의 주불전은 극락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7호)이다. 아미타불을 주불로 봉안했다. 정유재란 당시 호남의 거의 대부분의 사찰들이 피해를 특히 많이 입었다고 한다. 

현재 대원사 입구 티벳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극락전 탱화(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66호)는 정유재란의 상처를 여러 사람의 의지로 이겨내고 거듭나겠다는 발원이 깃든 문화재다. 당시 신심과 실력을 갖춘 18명의 화승(화가 스님)들이 합심하여 그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대원사는 태아령 천도 사찰로 유명하다. 생명을 받았으나 유산이나 사산, 낙태 등으로 빛을 보지 못한 영혼들과, 태어났으나 49일 이전에 죽는 바람에 천도는커녕 무덤조차 가지지 못한 영혼 등 어려서 죽은, 흔한 말로 제삿밥도 얻어먹지 못하는 영혼들을 천도한다. 일주문과 극락전 옆 지장전에는 빨간 모자를 쓴 태아령상들이 봉안되어 있다. 빨간 모자는 어머니, 흰줄은 아버지를 상징한다고 한다.  

대원사가 태아령 천도를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 주지 정륜 스님에 의하면 대원사의 태아령 천도의 취지는 이런 영혼들 천도와 함께 우리나라의 만연한 낙태 풍조를 줄여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 시작했을 당시 "절들이 조상들까지 팔아 돈 버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을 가지고 돈벌이 하는가?"와 같은 비난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어렸을 때 어떤 집 아이가 죽자 항아리에 담아 사람들이 잘 다니는 길가에 묻었다는 이야길 들었다. 너무 어렸을 때 죽거나 태어나지도 못한 채 죽은 영혼들을 위로함으로써, 한때 부모 자식 간의 연으로 이어졌던 생명을 부지불식간에 보내고 죽는 날까지 응어리진 가슴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위로해주는 대원사가 고맙고 아름다워 보인다.

5.5km 왕벚나무 길, 벚꽃 필 때 아니어도 좋네 

대원사에 가는 사람들에게 '꼭 눈여겨 보고 그리고 충분히 느껴보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은 것은 자연친화적인 절의 환경이다. 주불전인 극락전 마당을 비롯하여 경내 여기저기에 연못들을 조성했다. 연못들마다 6월 현재 수련과 노랑어리연이 가득 피었고 연잎이 머지 않아 꽃 피울 날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피어나고 있었다. 이 연못들 사이는 물론 경내 곳곳에는 풀꽃들이 그냥 자랄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가꾸되 자연을 최대한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몇 년 동안 산에 다니며 나무나 풀 등에 관심을 두고 보니 작은 풀 한 포기도 저마다 살고 싶은 곳이 있는 것 같다. 때문에 산에서 자라는 야생화를 가져다 집에 심으면 적응하지 못하고 십중팔구는 죽는다. 반대로 온실 속에서 자란 원예품종의 꽃들을 깊은 산에 심으면 차가운 공기에 적응하느라 고통스러울 것이다. 아울러 사람들 손에 의해 자라지 않던 곳으로 옮겨짐으로써 생태계 변화까지 유발하게 된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여하간 깊은 산속의 절에서 원예품종의 꽃들만 주로 심어 가꾼 화단을 보게 되면 아쉬움이 먼저 일곤 한다. 주변의 야생화 씨앗들을 받아 뿌려주는 것으로 충분히 아름답고, 여러모로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공양과 연잎차를 얻어먹은 후, 여기저기 수십 마리의 나비들이 떼 지어 날아다니는 대원사를 뒤로 하고 길을 나섰다. 5.5km에 이르는 왕벚나무 길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대원사를 나선 지 그리 오래지 않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나타났다. 20년쯤 되었을 왕벚나무들의 녹음이 드리운 그늘 덕분에 모자 없이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었다. 

사실 한편으론 벚꽃이 만발할 때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의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걸으면 걸을수록 "벚꽃 필 때보다 지금이 좋은 것 같다", "호젓하게 걸으며 생각하기 좋다"고 말했던 버스 기사와 대원사 스님의 말이 실감날 만큼 멋진 길이 계속됐다.

사진을 찍고 또 찍으며 걸었다. 아름다운 길을 지척에 둔 보성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먼 길이지만 이제라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하면서, 기획기사 당시 지레 겁을 먹고 탐방 나가지 못했음을 후회하면서, 걸으며 자란 고향의 길들을 떠올리면서, 최근 복잡하게 엉켜들었던 생각들과 이래저래 떠오르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인동초와 매미꽃 같은 꽃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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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사 왕벚나무길(2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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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사 왕벚나무길(2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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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길, 불편함과 아쉬움도 

그러나 이 아름다운 길은 아름다움에 취해 마냥 걷기에는 한편으로 너무 많이 불편하고 아쉬운 길이었다.

평소 5.5km 산행은 가볍게 하는지라 별다른 생각 없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원사에서 원두커피를 얻어 마셨기 때문인지 걸은 지 30분쯤 되었을 때 볼일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한 시간 남짓 걸었을 때는 잠시 쉬면서 간식도 먹고 물도 마시고 싶었다. 어느 정도 걸었으며 얼마나 남았는지도 궁금했다. 그러나 5.5km 구간에는 의자는 물론 앉아 쉴 수 있는 어떤 시설도, 간이 화장실 하나 없었다. 더욱이 어느 길에나 있기 마련인 이정표 하나 서 있지 않다. 

때문일까? 걷는 사람은 거의 없다. 5.5km를 걷는 2시간 반 동안 딱 세 팀을 만났다. 연인 두 쌍과 초등학생 남매를 둔 부부. 그런데 이들도 이야기를 해보니 중간에 차를 두고 잠깐 걷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대원사부터 입구까지 걷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던 것이다. 대신 수많은 차들이 씽씽 달렸다. 그 차들 중 몇 대는 태워다 주겠노라 먼저 제의했다. 나중에야 짐작이 됐다. 걷기에는 불편한 길을 걷는 내가 안쓰러웠던 것이었으리라. 

도무지 얼마나 더 가야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지, 도무지 얼마만큼 걸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길을 막연하게 걸으며 보성군청이 좋은 길을 너무 망치고 있다는 생각만 거듭 들었다. 

간이화장실이나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의자나 이정표 등 기본적인 시설만이라도 갖춰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준다면 걸어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질 것이다. 그게 아름다운 길 100선 선정이나 아름다운 숲 수상 취지에 맞는 것일 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걷기에는 좀 불편한 길이지만 그러나 시간만 주어진다면 다시 걷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길이다. 그리고 차로 씽씽 달리기엔 너무 아까운 길이다. 걷는 사람들이, 그러면서 숲이 주는 고마움과 가치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큰 그런 길이다. 

 

보성군청 "빠른 시일 안에 이정표 설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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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사 왕벚나무길(2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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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봄이면 벚꽃 축제를 한다는 것, 대원사에서는 연꽃축제도 한다는 것을 알고 갔다. 버스 기사에게 물어보니 엄청난 인파가 몰린단다. 보성군청의 미흡한 행정이 더욱 실망스러웠다. 

길을 걸으며 불편했던 것들을 말하고자 지난 18일 보성군청에 전화를 했다. 군청에 의하면 이 지역에 예전에는 좀 더 많은 주민들이 살았단다. 그러나 주암댐 건설로 대부분 이주하고 현재 15가구 정도가 드문드문 흩어져 살고 있다. 이런 주민들의 사정 때문에 현재 차량을 전면 통제할 수 없는 상황, 게다가 걷기에는 너무 길다는 의견이 있어 입구와 중간에 주차장을 마련함으로써 걷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유도하는 등의 방법들을 생각중이란다. 

이런 군청에 우선 의자나 이정표만이라도 설치해줄 것을 제안했다. 군청은 "예산이 그리 많이 드는 일이 아닌 만큼 빠른 시일 안에 설치하도록 하겠다. 생각 못했던 부분인데 지적하고 제안을 해줘서 감사드린다. 결과를 알려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참고로 그간 이 길에서 열린 벚꽃축제(2014년이 제4회)는 대원사 왕벚꽃길과 인근의 자연환경보존 등을 위해 농민들이나 주민 등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아름다운 길 보존회'가 주최해오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그간 대원사 왕벚나무길의 나무가 유실된 부분에 나무를 심어 가꾸는 등의 일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출처: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5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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