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사에는 티베트가 있다
관리자
2003년 3월 30일 오전 10시쯤 찾아간 대원사. 그날은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3월에 눈이 온다는 뉴스가 라디오에서 흘러 나왔다. 눈이 어깨에 쏟아졌다. 산으로 둘러싸인 눈 속 대원사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스님 계십니까?”
문을 여는 주지 현장(玄藏)스님
“설국(雪國)입니다.
승방에 앉자 차를 권했다.
“히말라야산 홍차에다 대만 산 연잎을 띄워 우려 냈습니다”.
꼬마 주먹만이나 할 찻잔을 집어 든 속인은 뜨거운 기운을 느끼면서 향을 맛보았다. 스님 뒤쪽엔 산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부처상이 아니라 이국적인 느낌의 불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필자는 전날 “티베트에 관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라고 했었다. 티베트 불상이라 나름으로 짐작했다.
스님은 “망명 티베트인 전화번호부에 대원사가 등재될 것으로 보인다”며 티베트에 관해 운을 떼었다.
티베트는 세계의 지붕이어서 눈의 나라로도 불린다. 티베트의 평균고도가 3962m다. 세계 최고의 산인 해발고도8848m의 에베레스트가 티베트와 네팔 국경에 있다. 티베트에서는 이 최고의 산을 초모롱마, 즉 세계의 여신이라 부른다.
스님과의 첫 만남이 눈 오는 날이었고 설국이라는 인사를 들었으니 티베트와의 인연이 시작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현장스님의 티베트와의 연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님은 인도 북부지역을 여행했다. “작은 티베트”라 불리는 라닥을 방문했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의 타임캡슐‘ 이라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중국의 티베트 침공에서도 해를 입지 않았고, 이슬람에 의한 인도지역 불교문화의 파괴에서도 벗어났다고 한다. 그럴 것이 중국과 인도의 접경지이고 히말라야의 오지였기 때문이다. 이곳은 1974년 관광들에게 처음 개방됐다.
불교문화를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는 이곳에서 스님이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 당시 티베트인의 정치적·종교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쵸크람사에서 묵언기도 중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도 참으로 편안하게 해 주었다고 한다. 꾸밈없이 소탈한 모습이 아주 매력적이었다고 스님은 말했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의 값어치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달라이 라마를 만나고 저는 달라이 라마와 같은 큰 열매를 맺은 티베트 불교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이후 여러 차례 티베트와 중국, 인도, 몽골지역을 답사했다. 2001년까지 8차례였다고 말했다. 티베트 불교가 무엇일까. 그곳 스님들을 만나고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티베트 스님들을 대원사에 초청, 한두 해씩 함께 묵으면서 이해를 깊게 해왔다.
28세 때 망명, 어느덧 예순이 된 한 망명 티베트 스님에게 현장스님이 물었다.
“그렇게 많은 동족을 주이고 사원을 파괴한 중국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시 부모님이 죽임을 당했어요. 분하고 괴로웠습니다. 깊이 생각해보니 그들은 명령에 따라 움직인 사람들에 불과했던 것이었습니다. 중국 군인은 잘못된 업으로 고통을 받게 될 사람들인데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20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고 고문으로 몸이 망가진 또 다른 티베트 스님은 “가장 괴로웠을 때가 중국사람들에 대한 자비심을 잃어버렸을 때였다” 고 답했다고 현장스님은 말했다. 현장스님이 이해하는 티베트 불교는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난 완전한 삶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깊이 노력해 왔다. 왕에서부터 저 아래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그렇고 전 국토가 큰 사찰과 같았다고 했다. 티베트인들은 누구나 기도와 수행을 생활화한다. 우린 종교와 생활이 따로여서 ‘가르침을 받되 따르지는 않는다’는 점이 대비된다고 했다. 우리들은 그러나 가르침과 실천이라는 그 전통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현장스님은 잃어버린 우리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 티베트불교에서 그 전형을 찾고자 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느덧 현장 스님은 불교계에서는 티베트 전문불자로 알려졌다.
처음에는 슬라이드 강연을 헀는데, 각 사찰에서 100차례를 넘었다. 1998년 『티베트의 예술과 자연』이란 책자도 발견했다. 그리고 같은 해 티베트 불교미술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그의 티베트에 관한 열정은 한 단계 더 나아가 티베트 박물관으로 결실을 보였다.
2001년 7월 8일 대원사 경내에 티베트 박물관을 개관했다. 제4대 달라이 라마로부터 개관축사 서신도 받았다.
달라이 라마는 서신에서 “많은 티베트 문화유산이 티베트 땅에서 파괴되고 있는 이때, 티베트 박물관울 연다고 하니 무척 기쁘다” 며 “불교도든 아니든 모든 한국분들께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기를 기원했다.” 고 말했다.
개관하기 한달전 대원사를 다녀간 주일 티베트 망명정부 대사 자툴린포체는 “티베트에도, 망명정부(인도 다람살라 소재)에도 없는 박물관”이라고 했다.
이 박물관은 지하 1충, 지상 2충(연면적 726㎡) 규모의 아담한 규모 이곳에는 티베트 불상과 경전, 천문·지리·의학·점성술 등 생활문화 전반을 기록한 탕카(티베트 불화), 밀교법구, 민속품 등 모두1000여 점을 전시한다. 달라이 라마 기념실과 티베트 법당, 영상자료실, 티베트와 인연을 맺었던 신라왕자 무상선사(無相輝師, 金和尙, 686~756) 기념관도 마련했다.
현장스님은 “지난 천년 동안 영적으로 더욱 깊어지는 데 국가 목표를 두었던 특이한 곳이 바로 티베트였다” 며 “티베트 정신문화에서 영적인 각성을 하는 데 신선한 물줄기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고 말했다. 티베트의 정신문화를 배울 수 있는 터전으로 가꾸고 싶은 것이 현장스님의 바람이다.
티베트 스님들을 초청해 강좌도 열고, 티베트불교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티베트의 의술과 춤 등 생활문화도 배우는 곳으로 가꿔 나가고 싶다는 것이다.
현장스님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항상 온화한 모습이다. 1975년 출가 송광사 구산{九山)스님으로부터 배웠다.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했고, 월간『해인」지와 『불일회보』 편집장도 맡았다. 현장스님이 거처하는 방에는 신동엽 시인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라는 시가 묵으로 씌어 있었다.
대원사는 여순 사건과 한국전쟁의 참화를 입었다. 모두 불에 타고 극락전만 남을 정도로 퇴락 했다. 보성 사람들이 일어섰다. 대원사 중창을 주도한 보성 출신 김중채(金重宋) 씨는 “군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공찰(公剩)을 살려야 한다고 보성 사람들이 뜻을 모았었다“ 고 말했다. 지역과 출향 인사를 포함한 대원사 중창추진위원회를 구성, 중창불사에 나섰다. 그리하여 1992년까지 3년 동안 자인당(주지실)과 요사(살림건물), 선원을 지었다.
1982년 이 절을 찾은 적이 있던 현장스님은 ”절로 이르는 길도 비좁았고, 절에는 기울어 가는 살림집에서 비구니 홀로 절을 쓸쓸하게 지키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 절은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천봉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백제 무령왕3년(503년) 신라승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세웠다고 구전되고 있으나 창건연대를 밝히기가 어렵다. 고려 후기 원종(1259~1274) 무렵 원오국사(圓惜國師)에 의해 중건됐다.
大元寺로 표기되다가 17~18세기 무렵부터 大原寺로 쓰이고 있다. 광주 방향에서는 전남 화순과 보성의 군계를 지나 첫번째 다리 입구에서 오른편으로 5km쯤 오르면 대원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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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시:
- 2004-04-17 오전 11:42: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