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05-09 18:11] 티베트 경전 한국어 번역 위해 작년 서울 유학… 교육원 다녀 “전생에 숱한 인연 있는 듯 한국생활 전혀 낯설지 않아” [조선일보 온종림 기자] “대부분 범어(梵語·산스크리트어)와 티베트어로 기록된 불교 경전이 영어나 중국어로 번역됐다가 다시 각 나라 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원전의 뜻이 잘못 전해질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심각한 해석의 오류를 범할 수도 있지요. 중국 당나라 때 현장 스님이 경전을 구하기 위해 천축국을 찾은 것처럼, 저 역시 한국 불교와 티베트 불교를 직접 연결해 주는 고리가 되고자 한국에 왔습니다.” 티베트 출신 승려 롭상 징메(Robsang Jingmey·43)가 “불경의 가르침을 한국어로 제대로 전하겠다”며 방한해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머물고 있다. 그가 한국을 찾은 것은 지난해 9월. 인도 겔룩파(Gelukpa)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서미 모노스트리 대학(Sermy Monostry University)에서 불교철학을 강의한 교수 출신 학승(學僧)인 그는 입국 후 경희대 국제교육원(원장 김중섭·金重燮)에 입학해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티베트 경전을 우리말로 번역하기 위해서다. 탄압을 피해 티베트에서 북인도로 이주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롭상 징메는 14세 때에 출가해 이후로 꾸준히 고된 수행의 길을 걷고 있다. “아마 전생에 숱한 인연이 있었기에 제가 한국에 왔을 겁니다. 한국 생활이 낯설게 느껴지지가 않아요. 하지만 한국말과 글은 너무 어려워요.” 남다른 사명감을 안고 왔기 때문일까, 한국생활이 고작 8개월째인데도 그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말하지는 못해도 어지간한 한글을 줄줄이 읽고 이해한다는 게 주위의 말이다. 그는 “한국 불교와 티베트 불교는 기본 교리는 같지만 수행방법을 달리한다”며 “한국 불교가 선(禪)불교의 방식을 따라 수행하는 데 비해, 티베트 불교는 인도의 티베트 장경을 중시하고 금강승이라는 밀교 수행법을 따른다는 것이 큰 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2000년 달라이 라마의 방한이 무산된 일도 잘 알고 있었다. “한국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 등 여러 형편을 고려해 달라이 라마의 방한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는 그는 “달라이 라마도 그 사정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한국 불교신자들이 다시 초청하면 역시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혹시 다른 종교를 가진 분들이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싫어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는 미국을 방문했을 때 기독교인들을 위해 강의를 할 정도로 다른 삶과 신앙에 대해 폭넓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 “불교의 기본 교리인 자비(慈悲)는 남에게 베푸는 이타심(利他心)을 말하는 만큼, 오늘 국가 간의 분쟁이나 이웃 간의 애증 역시 자비로 해결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의 사찰을 많이 둘러봤지만 특히 전라남도 순천의 송광사가 마음에 쏙 들었다는 그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경전 번역을 해낼 정도로 한국어를 익히면 다시 인도로 돌아가 한국과 한국 불교를 널리 알릴 것”이라며 웃었다. (온종림기자 noori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