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중국 소림사?"

소림사 무술에 반한 티벳 금강스님
기수련받다 '무림'에 발디딘 9살 숭연君
"헙! 합! 야이이!" 대원사 새벽을 깨운다

헙! 합! 야이이!
"어! 여기가 소림사?"

어린아이가 마당을 뛰고 구르고 하늘을 난다.
허공에 대고 주먹을 휘두르더니 딱 멈춰 자세를 취한다.
영락없는 한 마리 작은 맹수의 모양이다.
그 옆에 동자승같은 스님 한분이 서있다.
여리고 순하디 순한 인상이던 스님이 갑자기 몸을 움직인다.
바람처럼 날쌘 동작 하나하나가 무림의 '고수'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두사람이 주고 받는 말을 도통 알아 들을 수 없다.
중국말이다.
마치 중국 무협영화의 한 장면인가 싶다.

보성 대원사 천봉선원 앞마당에서 매일 펼쳐지는 무예수련의 모습이다.
사부와 제자는 티벳승려 금강(티벳법명 소남체랑)과 울산이 고향인 이숭연(9)군.
'소림동자권'을 사사중이다.
중국 북경과 소림사를 거쳐 대원사에 이르기까지 2년째다.

'티벳스님과 한국 어린이의 만남' 자체가 경이롭다.
사제의 예사롭지 않은 인연은 숱한 사연과 또다른 연과 연의 고리속에 비롯됐다.

11월26일, 금강의 사부인 정암스님(북경대 철학과 박사과정)과 숭연의 부모님이 대원사를 찾았다. 정암스님(중국어 통역)과 대원사 주지 현장스님, 숭연의 부모가 이들 사제와 함께 만나는 자리. 비로소 산사의 '소림동자권'에 얽힌 의문이 한가닥씩 풀어진다. 

-금강스님, 어떻게 무술을 시작하셨는지요.
=티벳에서 나서 9세에 출가했습니다. 어느날 소림무술을 주제로 한 중국영화를 보고 반해 '소림사에서 무술을 배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결국 티벳에서 중국 소림사까지 도망을 간 거지요.(금강스님의 세속의 나이는 22세. 불경스럽다 싶어 표현은 못했지만 얼굴 가득 너무 이쁘고 얌전한 소년의 미소를 담고 있다)

-정암스님, 숭연이와 금강스님은 언제 어떻게 만났습니까?
=인연이 닿은 게지요. 숭연이 아버지와 저는 절친한 친구사이입니다. 금강은 제가 중국을 돌며 토굴수련을 할 때 만난 제자이고요. 99년 3월, 아버지를 따라온 숭연이 병약하고 건강이 좋지 않아 금강으로부터 무예와 기수련을 익히도록 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들 사제는 북경을 거쳐 소림사로 들어가 1년동안 무예를 닦았고 지난달 현장스님의 배려로 대원사에서 수련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숭연의 부모는  대금과 단소가 전공인 국악인이다.  '맑고 밝은 심신의 수련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정암스님의 권유에 따랐다고 한다.
숭연의 무예는 지난해 소림사에서 열린 아동소림무술대회에서 '소림규정권' 4위, '소림도' 8위 입상으로 빛을 발했다. '권법'에서부터 '소림검법' '소림봉법' '소림창법' 등 5년 정규과정의 14세미만 소림무술을 6개월여만에 이수했다. 현재 공력을 쌓아가는 정도로 보면 넉넉히 잡아도 3년내에 '소림동자권'을 전수받을 것 같다고 한다.
초등학교 2학년을 휴학상태인 숭연은 소화유치원을 나온 데다 중국유학까지 해서인지 금강스님과 의사소통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

"숭연아, 힘들지? 엄마 보고 싶지 않아? 스승님이 무서워?"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숭연이는 큰 눈을 껌뻑이며 그저 "예"하고 만다.

새벽4시에 일어나 예불을 드린 후 시작되는 수련은 아침, 오전과 오후, 저녁까지 하루 4차례 10시간이나 된다. 아홉살 어린아이에겐 힘든 일이겠지만 천성이 착하고 끈기가 있는 데다 산사에서 키운 내공으로 묵묵히 이겨낸다고 한다.

-현장스님, 숭연과 금강스님은 사사가 끝나면 헤어지는 겁니까?
=숭연은 무술에 대한 천재성을 타고난 데다 금강이라는 훌륭한 사부를 만나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공력을 쌓고 무술을 익히고 있답니다. 금강은 태극권과 소림무술에 능하고 심신의 기가 충만한 스님입니다. 대원사에 계속 머무르면서 숭연이 뿐만 아니라 어린이 수련을 맡아주실 것입니다.

숭연의 부모를 사이에 두고 사제가 권법을 편다.
대금소리 단소소리가 바람을 따라 산사를 둘러친 대숲을 파고 든다.
사제의 모습은 학인 양, 호랑이인 양 신비롭기만 하다.
티벳승려, 중국소림사, 한국의 소년무사...
왠지 아귀가 맞지 않는 듯한 이야기들이 시공을 훌쩍 건너뛰어 한자리에 있다.

천봉산 아래 대원사 마당풍경은 돌아서니 마치 꿈만 같다.
황풍년 기자(hwpoong@jeonlad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