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법석 한 번 잘 떨었다"

         스님 수녀 한데 모인 대원사 종교음악축제

대원사 절마당에서 '그레고리안 성가'가 울려 퍼진다. 모여 앉은 1000여 명의 사람들은 그 성가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스님 수녀 한데 모인 대원사의 세계 평화기원 종교음악 축제 '야단법석'. 그 자리는 말 그대로 야단법석(野壇法席)이었다. 야외에 자리를 마련하여 부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자연히 시끌벅적 '야단법석'을 떨었다.

무엇이 다른 종교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대원사 절마당으로 불러 모은 것일까. 그것은 음악의 힘을 빌려 기원하는 세계의 '평화'였으며 '우리는 한꽃'이라는 깨달음이었다.
5일 대원사 극락전 앞에서 치러진 '대원사 개산 1500년 기념행사 및 세계 평화기원 종교음악 축제'는 그렇게 서로 다른 우리가 한꽃이며 한몸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사람들이 그 사소한 거리의 간극을 지금껏 메우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스스로 반성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해인 시인의 축시는 그래서 축하보다는 지나온 날을 뉘우치고, 서로 사랑하기 위해 준비하자는 의미로 들렸다.

평화라는 이름으로 아프게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 되어 길 위에 서 있습니다
부처님의 자비 속에 예수님의 사랑 속에
어서 한 송이 꽃이 되어 오십시오
<이해인의 축시-평화로 가는 길 위에서
-부분>

이해인 시인은 "우리는 서로 다른 종교를 가졌지만 오늘 행사를 통해 남몰래 키우던 불신을 버리고 이해와 사랑을 마음에 품을 수 있게 되었다"며 와서 보니 "불자들의 삶이 곧 시로 보인다"고 말했다.

평화는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적어도 이날 대원사 절마당에서는 그랬다.
송광사 주지 현봉스님이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그 말씀의 소리는 소리를 낳고 이 세상은 온통 소리들로 넘친다. 소리가 만드는 빛깔과 향기로 동서양의 종교가 조화를 이룬다"고 운을 떼자 고성 분도수도원의 요나수사는 " '자비축원문'을 듣고 수도자들말고도 온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가 아무리 서로 달라도 같은 기도문을 드리고 있는 사람들이니 우리는 참으로 한몸이다"고 말했다. 그 말들 속에 이미 평화는 자리잡고 있었다.

성가가수 이정식의 '평화의 노래',  정율스님의 '나를 바치나이다. 나무아미타불' 공연으로 1부 행사가 끝나고, 고성 분도수도원 수사 20명이 부른 주말미사곡 '그레고리안 성가'로 본격적인 2부 행사가 시작되었을 때 대원사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 하나되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있었다.
모든 것이 고즈넉한 산사로 성가소리가 흘러나올 때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러나 세상의 어떤 것보다 단단한 또 하나의 벽이 금이 가기 시작하고 마침내 산산이 부서지는 광경을 사람들은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법고와 대종 소리로 사찰의 저녁예불 모습을 보여준 송광사 학운스님들과 수사들이 찍은 사진 한 컷은 그 순간의 기록이 아니었다. 영원한 평화를 기록하는 의식처럼 장엄하기까지 했다.

달라이라마 노벨 평화상 수상 기념 평화 콘서트를 주최했고 영화 '티벳에서의 7년'의 음악을 작곡한 나왕 케촉의 연주도 있었다. 류시화 시인은 나왕 케촉의 연주를 듣고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은 소음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한다. 나왕 케촉은 작은 티베트 피리 하나로 그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님을 증명했다. 나왕 케촉의 연주는 이 세상의 소리가 아닌 듯 아득하게 들려오다가 어느 순간 가깝게 다가와 마음을 후볐다. 피리 하나로 경쾌하고, 맑고, 슬프고, 적막을 넘어 괴기스럽기까지 한 소리들을 마음껏 토해냈다. 나왕 케촉의 연주가 계속되는 동안 사람들은 모두 눈을 감았다. 조용하던 대원사 극락전은 더욱 낮게 가라앉았다.
공연을 마친 나왕 케촉은 "살면서 자기 삶 속에서 사랑을 즐기면 불교인은 좋은 불자가 될 것이고, 기독교인은 좋은 신자가 될 것이고,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은 좋은 인간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뒤이은 이애주 선생과 '한춤공동체'의 바람춤, 법고춤, 살풀이춤은 느린 춤사위로 시작해 몰아치듯 빠르게 흐르다가 다시 감정이 승화되어 조용히 끝을 맺었다. 슬픔을 풀어 환희의 세계로 승화시킨다는 이애주 선생의 살풀이춤처럼 모든 세상의 아픔을 음악과 춤으로 끌어안은 채 대원사의 '야단법석'도 마무리되었다.
대원사 주지 현장스님은 "대원사를 살아서 방황하는 사람과 죽어서 떠도는 영혼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절, 한국 사람만이 아니라 외국 사람들도 한국의 전통과 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절, 불자뿐만 아니라 이웃 종교인들이 함께 공감하고 서로 마음을 나눌수 있는 절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이번 축제를 열었다"며 "야단법석 한 번 잘 떨었다. 다음 행사는 1500년 후에 하겠다"는 말로 음악이 모두를 하나로 묶었던 축제를 마쳤다.
정상철 기자  dreams@jeonlado.com

**5월11일 오후 4시 대원사 '야단법석'에서는 대원사의 김지장 기념관 건립과 김지장 삼존상 봉안식을 기념하여 '한·중·일 삼국 차문화 교류대회'가 열린다. 교류대회는 '한·중·일 삼국 다인들이 모여 헌공다례의식을 올리고 삼국에 전승되는 고유의 차문화를 소개하는 자리이다. 우리국악 공연이 펼쳐지고 헌공다례가 끝나면 차음악과 함께 동다송 공연이 시인 박희준 선생의 기획으로 삼국의 다인들에게 헌공될 예정이다.
김지장 스님은 신라 성덕왕의 왕자로 태어나 금지차라는 신라차를 가지고 중국 구화산으로 건너가 초인적인 고행과 뛰어난 법력으로 그곳 사람들을 교화하다가 99세 되는 794년 열반에 들었다. 스님이 열반할 때 "내가 열반한 뒤 내 몸을 화장하지 말고 돌함에 넣어 두었다가 세 해가 지난 뒤 열어 보아라. 만일 그때까지 썩지 않으면 그대로 개금하여라"는 유언을 하여 세 해 뒤에 돌함을 여니 얼굴은 살아 있는 듯하고 살갗은 두드럽고 향내음이 났다고 한다. 그리하여 서기 797년 구화산 남대에 등신불을 모시고 그 위에 법당을 지었다. 오늘날 구화산의 육신보전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은 스님을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받들었고, 스님으로 인해 중국불교에 육신보살의 전통이 생겨났다. 지장스님이 열반한 음력 7월30일은 중국에서 가장 성대한 종교축제가 열린다.
신라왕자 김지장 스님은 '한·중·일 세 나라에서 함께 받드는 위대한 스승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