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전남 보성 대원사(大原寺) 극락전 옆 '저승의 어머니'라 불리는 태안지장보살(胎安地藏菩薩)상 아래에 있는 '빨간모자 동자승'에 대한 유래를 메모하고 있을 무렵, 평소 친히 지내던 대원사 총무보살님께서 현장(玄藏) 큰스님께 인사드리라고 해 뒤를 보니, 큰스님이 웃음 지으면서 바로 뒤에 서 계셨다.

 "열심히 적고 계십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엉겁결에 합장도 잊은 채 짤막하게 인사를 나눈 순간, 인자하고 온화하면서도 위풍당당한 큰스님의 모습에서 1990년 이후 오늘날까지 사찰 복원과 중창사업에 전력투구한 에너지가 아직도 충만 해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대원사는 1년에 두 차례 낙태아들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백일 기도를 열어 불자들만 아니라 비신자들에게도 관심을 끌고있는데, '저승의 어머니' 태안지장보살상 아래에 있는 동자상들은 빨간모자를 쓰고 줄지어 앉아 사진촬영 모델(?)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경내 여기저기에는 빨간모자를 쓴 동자승이 수없이 많다. 공들여 쌓아올린 돌탑 꼭대기와 '용서하는 왕목탁' 주변에도 빨간모자 동자승은 어김없이 앉아있는 모습들이다.

 동자승들이 쓰고 있는 모자의 빨간색은 어머니의 따뜻한 온정을 상징하고, 하얀 테두리는 밝은 빛을 비춰주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빨간모자 동자승은 어머니의 탯줄을 상징한다는 '벚꽃 길'과 죽음 체험실이 있는 '티벳 박물관'과 더불어 대원사의 3대 명물로 자리잡고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대원사 사찰 경내의 여기저기 나뭇가지에는 알다가도 모를 알쏭달쏭한 법어들이 고은 글씨로 적혀있어 눈길을 끌고 있기도 하다.

 '어려움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것이다.'
 '용맹가운데 가장 큰 용맹은 옳고도 지는 것이다.'
 '공부 가운데 가장 큰 공부는 남의 허물을 뒤집어 쓰는 것이다.'
 '고민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고민할 것 없다. 고민해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고민할 것 없다.'
 '입 속에는 말이 적게, 마음에는 일이 적게, 위장에는 밥이 적게, 밤에는 잠이 적게, 이 네 가지만 적게 해도 그대는 곧 깨달을 수 있다.'

 필자는 때마침, 현장 큰스님께서 템플스테이한 '불교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 30명에게 2000년 전의 연꽃 대하연(大賀蓮)과 금종루(金鐘樓)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하신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무더운 여름 날, 피서용 조크도 잊지 않으셨다. "여러분! 서양귀신과 동양귀신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으신 후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자, "서양귀신은 피를 빨고, 동양귀신은 피를 흘린답니다."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현장 큰스님은 역시 다른 사찰과 다른 차별화된 전략과 설법으로 대원사를 이름나게 하시고. 종재기가 아닌 항아리처럼 큰그릇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