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능행 스님, 20년째 ‘돌봄 수행’ 담은 에세이 ‘숨’ 펴내
“물질문명이 득세하면서 오히려 죽음의 질은 낮아졌습니다. 가족 안에서 헌신하는 관계가 줄어들고, 집단 속에서도 개인은 위축되고…. 정서적으로 피폐해졌기 때문이죠. 한 인간이 죽어갈 때를 보면 그 사회의 문제점들이 현저하게 드러나지요.”
능행 스님은 “많은 이들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잘 준비하면 ‘아름다운 죽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능행 스님은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돌봄 수행’”이라고 했다. 스님은 올해로 20년째 이 일을 해오고 있다. 스님은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울산 울주군 상북면) 병원장이기도 하다. 출가 후 1995년부터 전국을 돌며 행려병동 환자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돌보던 스님은 1999년 충북 청운군에서 병상 15개의 작은 호스피스센터를 무료로 운영하기도 했다. 해마다 70~100여명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고, 스님은 마지막 순간을 지켰다.
“당시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찾아왔지만 병상이 적었죠. 안타까움에 10년간 기부금을 모았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좀 더 많은 환자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병원도 다 못 짓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험난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지금도 재정 여건이 좋지 않아 무료는 아니고, 요양병원 기준으로 운영 중입니다.”
병원은 복도까지 온돌을 깔고, 홍송으로 문살을 만드는 등 정성을 들였다. 환자들이 따뜻한 집처럼 편안하게 느끼기를 원해서다. 스님은 환자들을 돌보다 매일 새벽 1시쯤 잠자리에 든다. 다시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 예불을 드리고, 자재요양병원 110개 병상을 한 곳도 빠짐없이 둘러본다. 밤새 사투를 벌이고, 다시 소중한 하루를 살게 된 환자들과 눈맞춤할 때면 스님도 값진 하루를 선사받은 기분이다.
최근 능행 스님은 지난 20년간 2000여명에 이르는 환자를 돌보고, 임종을 도우며 깊고 넓게 성찰한 것들을 책 <숨>(마음의 숲)으로 엮어냈다. “그동안 ‘돌봄 수행’을 하며 제가 깨달은 것들을 많은 사람들과 빨리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많은 이들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잘 준비하면 ‘아름다운 죽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거든요. 어떻게 하면 존엄한 죽음을 맞을지 모두가 알았으면 합니다.” 스님은 ‘웰다잉’에 작은 나침판 역할을 자청한 것이다.
‘아름다운 죽음’도 있을까. 스님은 “2년 전 ‘그분’을 보내면서 내 느낌이 그랬다”면서 ‘달달한 죽음’을 들려줬다. 58세로 위암투병 중에 자재요양병원에 온 중년 여성은 4개월가량 삶의 시간이 있었다. 통증완화 등 의료진의 돌봄 외에도 스님은 그 여성의 가족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죽음에 대한 ‘전략’을 짰다. 다음 생애는 무엇으로 태어날까,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지금부터라도 무엇을 해야 하나, 남기고 갈 것은, 어떤 옷을 입고 갈까 등을 구체적으로 얘기하며 기록하는 것이다. ‘그분’은 짧은 기간이지만 스님의 도움을 받아 매일 염불 수행 등을 하며 정신적 안정을 얻었다. 또 삶의 마지막 길을 화려한 한복을 입고 걷기를 원해 가족이 마련하는 등 갖가지 죽음 맞이 준비를 했다.
‘그분’은 어릴 적 먹은 홍어찜을 마지막 만찬으로 들고, 돌봐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다음 생애에는 가수가 되겠다는 희망을 갖고 편안히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아름다운 죽음의 반대쪽에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하는 죽음”이 있다. 아무런 준비가 없기 때문이다.
“내 삶이 소중했던 것만큼 내 죽음도 소중합니다. 사회, 가족이 아니라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해요. 죽음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죽음은 다음 생을 위한 ‘희망 프로젝트’이기도 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