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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물건리 방풍림

대원사

경남 남해 물건리 ‘방풍림’

숲의 가치를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들은 바닷가의 어부들이다. 바로 바닷바람을 걸러주는 방풍림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바닷가 사람들에게는 숲이 생명을 지켜주는 바람막이였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는 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방풍림이 많다. 오랜 역사가 있는 어촌에 들어서면 연륜이 느껴지는 방풍림을 만나게 된다.

경남 남해 삼동면 물건리는 아름다운 방풍림을 지켜온 마을이다. 삼동면에서 1024번 도로를 타고 동쪽 내륙을 파고들면 갑자기 탁 트인 바다를 만나게 된다. 산 중턱에 난 도로 아래로는 층층 다랑이논이 펼쳐져 있고, 그 밑으로 크고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그 아래 활시위처럼 굽어진 방풍림이 바다와 마을의 경계를 나누고 있다. 멀리서 숲의 울창함만 봐도 역사가 느껴지는 방풍림임을 알 수 있다. 물건리 방풍림의 정식 이름은 방조어부림(防潮漁府林). 보통 방풍림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숲 길이가 1.5㎞ 정도. 면적은 7,000여 평이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무성한 활엽수로 이뤄져 있다. 남해 어디나 방풍림을 볼 수 있지만 물건리 방조어부림은 남해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답다.

방풍림 앞에는 철조망이 둘려 외지인들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한다. 피서철 성수기에는 ‘방조림을 보호하자’는 경고 플래카드와 경고문이 곳곳에 내걸린다. 숲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 150호로 지정돼 있는 이 숲에는 말채나무, 가마귀밥여름나무, 누리장나무, 화살나무 등 좀처럼 보기 힘든 귀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상층목은 땡나무, 푸조나무, 상수리나무, 참느릅나무 등 2,000여 그루로 이뤄져 있다. 그 아래 보리수, 동백, 광대싸리, 윤노리 등 8만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아름드리 활엽수는 너무도 무성해서 한여름에도 빛이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울창하다. 숲그늘은 남해의 푸른 바다보다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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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풍림의 역사는 정확하지 않다. 수령 500년 이상 된 고목이 있는 것으로 봐서 고려 때부터 생겼을 것이라는 설과 300년 전 집중적으로 조성했다는 학설이 맞서고 있다. 옛 이름은 고기떼를 부르고 바람을 막는다는 뜻의 방조어유림(防潮魚游林). 나무가 물고기를 부르는 역할까지 했다. 물고기는 녹색을 좋아하는 성질이 있고, 연안의 그늘은 수온이 일정해서 고기떼가 쉬기 좋다는 것이다.

“해마다 섣달에는 저 밑 당산나무에서 제사를 드려요. 옛날부터 우리 마을은 숲 때문에 사는고마. 숲이 없었으면 바람과 파도 땜에 우예 살았겠노. 숲이 우리 마을의 보배야.”

허리 굽은 노인네들은 숲 자랑이 대단하다. 30년대 중반 남해가 태풍으로 쑥대밭이 됐을 때도 물건리가 무탈했던 것은 이 방풍림 때문이었다. 과학적으로 잘 가꾸어진 방풍림은 나무 높이의 35배 거리까지 바람의 피해를 막아준다고 한다. 태풍이 잦아드는 10월에는 풍어를 비는 동제도 지낸다. 여름 바람을 막아줘서 고맙고, 겨울어장도 풍성하게 해달라는 뜻이다.

물건리 방조어부림도 한때 위기를 맞기도 했다. 19세기 말 방풍림 일부를 벌채했던 것. 그 뒤 마을이 엄청난 폭풍 피해를 입으면서 ‘숲을 해치면 마을이 망한다’고 믿게 됐다. 당시 숲을 해치는 사람에겐 마을에서 벌금을 물리기로 했다. 옛날에는 숲이 해안뿐 아니라 마을 깊숙이까지 이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규모가 많이 줄었다.

물건리에서 미조항까지 물미 해안도로를 타고 내려가서 만나는 송정 해변에도 비슷한 방풍림이 있다. 천연기념물 29호로 지정된 미조 상록수림이다. 520여평 규모로 크기는 물건리보다 훨씬 작은 편. 느티나무와 팽나무, 말채나무, 소사나무, 들배나무, 보리수나무, 후박나무, 돈나무 등 초목식물과 맥아문재비, 도깨비고비 등 15종이 서식하고 있다. 물건리 방풍림처럼 해풍을 막는 역할뿐 아니라 풍수상 결함을 없애기 위해 숲을 형성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숲이 우거지면 인재가 나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물건리 방조림은 풍광이 아름다워서 이제는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방풍림이 경관림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방풍림 너머에는 넉넉한 바다가 펼쳐져 있다. 정동쪽에 자리잡은 바다는 이른 아침부터 일출에 비껴 금빛으로 반짝거린다. 해안은 몽돌로 이뤄져 있어 파도가 훑고 갈 때마다 돌 구르는 소리가 정겹다.

〈글·사진 최병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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